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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아이들과 바다에 갔다. 바다에서 놀고 있는데 구조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면서 왔다. 해수욕장으로 표시된 구역 외에서는 물놀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릎 높이의 얕은 바다에서 말이다. 바야흐로 안전의 시대이다. 안전이라는 말이 모든 가치에 우선하고 있다. 우리가 겪어온 사회적 재난이라고 할 만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를 이렇게 안전의 시대로 내몰고 있다.아이를 키우려면 조금은 위험하게 키우라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생채기가 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 학교에 가면 창문에 스텐봉이
건축과 삶
이현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시드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2025.11.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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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설계공모는 이상을 그리는 무대다. 청년의 건축사부터 노련한 건축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도시와 사람, 장소의 미래를 상상하며 경쟁한다. 공모전의 결과로 발표되는 ‘당선안’은 그 과정의 결실이자, 사회가 바라는 건축의 방향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건축이 현실로 지어질 때의 풍경을 기대한다. 하지만 정작 그 ‘이상’은 실제 건설 단계에서 종종 뒤틀리거나, 때로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가장 큰 이유는 예산의 벽이 높다. 설계공모는 대체로 한정된 예산 속에서 진행되지만, 심사
건축과 삶
윤지훈 건축사·스테이 건축사사무소 (경상남도건축사회)
2025.11.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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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늘 현실보다 조금 더 솔직하다. 추석을 앞두고 개봉한 ‘어쩔 수가 없다’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나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첫 번째는 공감하기 힘든 잔인함이 마음에 오래 남았고, 두 번째는 배우들의 눈빛과 숨소리, 음악의 울림, 그리고 현실처럼 낯익은 건축물과 장면들까지 한층 더 깊은 여운으로 다가왔다.영화 속 집 대문 너머로 보이는 낮게 깔린 마당과 오래된 유럽풍 주택의 외관, 그리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은 세월의 흔적 속에 완성된 도면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그 풍경 속에, 과거와 현재의 건축의 단면이 겹쳐 보였다.
건축과 삶
임현정 건축사·림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전라남도건축사회)
2025.10.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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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상에서 AI를 경험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물론 건축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스케치만으로 렌더링이 가능한 AI를 알게 되어, 오래전에 손으로 그린 스케치를 테스트 삼아 시도했었는데, 그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건축사 자격 취득 후 첫 프로젝트여서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고, 투시도는 외주작업을 했는데, 그 투시도를 만든 업체도 수많은 프로그램을 사용해 오랜 시간을 들여 결과물을 만들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손으로 그린 스케치가 그때 만든 투시도만큼,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의 결과물로 나
건축과 삶
강진호 건축사·(주)이든 건축사사무소(경상북도건축사회)
2025.10.1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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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 현관문을 열면 바닥은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다. 아직 가구도 들어오지 않아, 건축의 날것이 빛과 그림자로 드러나는 순간. 건축은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집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용승인을 받은 이 완벽한 상태는 그저 빈 공간일 뿐이다. 집의 진정한 완성은 가족이 그 안에서 살아가며 시간을 쌓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그 빈 공간이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며 비로소 ‘우리 집’이 되는 것이다.집이 완성되기까지는 설계와 시공이라는 주요 과정이 있다. 설계는 집의 크기와 방의 개수, 욕실의
건축과 삶
강미현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예감(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
2025.09.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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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건축사로 살아남는 일은 버티기의 기술이 아니다. 화재로 보금자리를 잃은 가족의 집을 설계하던 날,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선명해졌다. 동네 발전속도와 상처에 맞춰 호흡을 고르고 과장을 덜어내며, 필요한 것을 정확히 놓는 일. 그게 이곳에서의 건축이었다.학창 시절 그림을 따라 그리며 손의 감각을 키웠고, 역사소설을 넘기며 이야기를 쌓았다. 도면과 제도가 언어가 되자 현장은 교과서보다 친절했다. 전공과 맞닿은 군 생활로 시간을 경력으로 바꾸는 법을 배웠고, 사회로 돌아와서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에서 공부하며 길을
건축과 삶
최철용 건축사·최철용건축사사무소(충청남도건축사회)
2025.09.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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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대한건축사협회로부터 원고청탁을 받고 어떤 내용을 기고할지 고민이 되었다. 마감일이 다가와도 선뜻 주제를 정하기 어려웠다. 몇 건의 민간 소규모건축물 사용승인신청과 관급 설계용역 납품일정이 겹쳐서 정신없이 업무를 소화해야 했기에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인허가 과정 중 있었던 몇 가지 소회를 풀어보기로 한다.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해 현재까지 10여 년의 경험을 축적하면서, 우리 사업의 업태가 서비스라는 사실을 구구절절이 느낀다. 사무소를 개설하기 이전, 직원으로 설계업무를 담당했을 때는 건축주와 공공을 만
건축과 삶
배경희 건축사·시와 건축사사무소 (충청북도건축사회)
2025.08.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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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강릉에 분양을 앞둔 대형 건설사 브랜드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구경하려는 인파가 꽤 많아 긴 줄을 서야 했고, 기다리는 동안 분양 팸플릿을 훑어봤다. 문득, 10여 년 전 재개발 아파트를 설계하던 대형 사무소에서의 시간이 떠올랐다.그런데 어쩐지 단위세대 평면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발코니 구조변경 합법화’ 이후, 소위 ‘서비스 면적’을 단 0.33제곱미터(0.1평)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치르던 그때, 건축사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현재 전국 대부분 아파트 평면은 소위 원형을 정립해 버렸다고
건축과 삶
전희선 건축사·디자인플러스 건축사사무소 (강원특별자치도건축사회)
2025.08.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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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첫 월요일 아침 전화벨이 울린다. 두어 달 전 사무실에서 퇴사한 직원의 전화였다. 그 직원은 1년 2개월 정도 근무했었다. 00공사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1년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건축사사무소에서의 경험이 의미 있었다는 얘기를 전했다. 필자 역시 축하해 주며 근무하는 동안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 직원은 처음엔 인턴실습생으로 일했었다. 실습 이후 나는 직원으로 근무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공무원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해보고 싶다고 했고, 그녀의 열정과 밝은 성격이
건축과 삶
김성화 건축사·삼협건축사사무소(대구광역시건축사회)
2025.07.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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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고 얇은 헌법책을 샀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헌법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몇 달을 보내며, 필자도 시기를 같이해 헌법을 읽기 시작했다. 이는 그전까지 삶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헌법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헌법에 담긴 국가의 이념과 가치를 ‘체감’하며,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의 ‘의무’이며, 이로써 우리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은 ‘건축’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양적 성
건축과 삶
노영자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엘아이엠(LIM) (서울특별시건축사회)
2025.07.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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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재판을 통해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들은 소년보호시설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게 된다. 범죄자의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돕는 시설이다. Second Chance Library(이하 SCL)는 2024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6월 초, 경기도 각 지역의 기자이신 건축사님들과 이곳을 방문했다.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은 이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작가’로 불리게 된다. 작가로서 출근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는다. 교사는 ‘편집자’로 불린다. 작가를
건축과 삶
고성철 건축사·하하하 건축사사무소 (경기도건축사회)
2025.06.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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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갓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창문가에 앉는다. 잿빛 하늘 아래 벤추레이터를 품은 박공지붕이 그리 높지 않게 즐비해 있다. 주황. 파랑. 회색. 녹색 등 지붕색상도 다양하다. 재료는 대부분 샌드위치패널로 되어있다. 그 사이로 거대한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마치 1980년대 공장지대를 연상케 한다. 근거리에 화재로 인해 전체건물이 소실되고 철골의 뼈대만 검게 그을린 채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려나? 철거하고 신축하려나? 생각도 잠시, 멀리 시선을 어지럽히는 녹색의 그물망이 있다. 골프 연습장.
건축과 삶
이종숙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화담 (인천광역시건축사회)
2025.06.1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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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던 때, 행정업무에서 난관에 부딪쳐 건축주에게 피해가 갈 상황이 생겼다. 미리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스스로 해결해 보려 애썼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고 부문장님께 보고 드렸다. 그분은 평소 입버릇대로 무심하게 ‘거 뭣이라꼬’를 먼저 말씀하셨다. 그 정도의 해결책은 이미 갖고 있다는 듯, 혹은 수고했는데 결과가 나빠서 안타깝다는 듯.정말 해결하기 어려워 여러 날을 고민하다 말씀드렸는데 현황 이해도 하시기 전에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야 하고 섭섭한 마음이 먼저 일었다.하지만 그 말씀의 효과가 적지
건축과 삶
정민교 건축사·(주)에스티에이 건축사사무소 (부산광역시건축사회)
2025.05.23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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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편집인으로 활동 중인 건축저널 『濟州建築』은 창간 6주년을 넘어서 어느덧 7주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018년 창간호를 준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창간 당시 위원으로 4년간 참여했고,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지난해부터는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함께 해온 모든 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濟州建築』의 시작은 2018년,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제26대 김상언 회장의 취임과 함께 구성된 ‘소통위원회’에서 비롯되었다. 이 위원회는 제주 지역 건축문화예술인들과의 소통을 목표로
건축과 삶
고이권 건축사·비앤케이 건축사사무소 (제주특별자치도건축사회)
2025.05.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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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지 4년 차, 신진 건축사이다. 업무의 대부분은 경쟁률 수십 대 일의 공모전에 매달려 설계안을 계획하고, 모델링을 하는 것이다. 도시의 빈틈을 채우기 위한 상상력은 넘쳐나지만, 그 결과물은 대부분 심사위원의 시선을 끌다 사라지는 ‘가능성의 구조물’ 정도로 남는다.'나는 건물을 짓지 않는다.’필자의 일은 점점 ‘디지털 크리에이터’와 닮아가고 있다. 과거, 건축에 대한 인식은 설계부터 시공, 감리에 이르기까지 실제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는 일이었다면, 지금 필자가 하는 건축은 초기 구상에만 머
건축과 삶
성무석 건축사·무유림 건축사사무소 (경상남도건축사회)
2025.04.22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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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건축업계가 극심한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경제 위축과 금리 인상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의 둔화는 건축설계 분야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중소형 건축사사무소들은 일감 부족으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으며, 대형 프로젝트들도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지만, 그 그릇을 만드는 설계업계가 흔들리고 있다면 과연 우리의 미래 주거 환경이 온전할 수 있을까?가장 큰 문제는 경기 침체로 인한 건축 프로젝트 감소다. 신규 건축 수요가 줄어들면서 건축설계업계도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있다. 더욱이
건축과 삶
강석호 건축사·두민건축사사무소 (경상북도건축사회)
2025.04.08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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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는 보존되어야 하고, 후대에 잘 전해져야 한다. 우리 선조들의 삶과 얼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새로운 문화창조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와 보존이 필수다. 특히 전통건축 문화유산의 경우는 건축설계를 하는 건축사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그렇게 보면 우리가 설계를 하는 건축은 먼 훗날 국가유산이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재 많은 국가유산이 그 보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전쟁과 자연재앙,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로 파괴되었다. 그와 같은 과오를
건축과 삶
정종민 건축사 · 명인 건축사사무소 (전라남도건축사회)
2025.03.2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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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9일 여야 국회의원 13인이 ‘건축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였다. 이 법률안은 건축사법 제19조의 3(공공발주사업 등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을 → (건축사의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으로, 같은 조 ②항 중 “대가기준을 활용하거나 참고할 수 있다”에서 → “건축사의 업무범위 및 대가기준을 준용(準用)한다”로 개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쉽게 이야기하면 건축사 업무대가기준을 공공부문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이다. 2008년 독과점 논란으로 인해 관련 법이 폐지된 지 17
건축과 삶
이성영 건축사·(유)스페이스모 건축사사무소 (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
2025.03.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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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맞서 대응할 것인가. 인간이 태초부터 고민해 온 이 질문에 명심보감에서는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시대의 삶은 단순히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삶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 변화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건설경기 악화는 건축설계시장 위축뿐만 아니라, 건설업계 전체의 위기이며 특히나 자금력과 경쟁력이 약한 지방 건설사의 경우에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동네 한식뷔페(함바집)와 인쇄소가 하나 둘 문
건축과 삶
조흥태 건축사·바움 건축사사무소 (충청남도건축사회)
2025.02.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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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의 길로 접어든 지 이제 24년 차로 접어들고 있다. 꽤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러 오늘도 지나가고 있다. 오늘 내게는 “성공”이란 단어를 떠올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삶이라 느껴진다. 나에게 좋은 시절이라 말할 수 있는 날들이 다가올지 의문이다. 그러기에 난 걸어가야 하는 이 길에서 자주 방향을 잃게 된다. 하지만 언젠가 내 꿈을 위해 또 내가 웃을 수 있는 날을 위해 오늘도 걸어가고 있다.GOD의 노래 “길”의 가사에서 날 찾아본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알 수 없지만~ 오
건축과 삶
이장우 건축사·(주)청림 종합건축사사무소 (충청북도건축사회)
2025.02.11 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