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사이, 건축 설계의 무대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설계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던 프로그램과 도면이 이제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 형태로 바뀌었다. 클라우드 기반의 설계도구, AI 형상 생성기, 자동 용적률 계산 시스템 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다. 설계 정보의 개방과 공유라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AI 설계 플랫폼은 이미 건축 데이터를 학습해 ‘합리적인’ 형태를 제안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몇몇 프로그램은 AI를 기반으로 대지의 형태, 일조, 조
시론
양홍철 건축사·(주)브엔엘메타건축사사무소
2025.11.25 13:23
-
2024년도에 ‘I AM KIRA 신입 회원에게 듣는다’ 코너를 통해 대한건축사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건축사자격시험에 합격하고 기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개업 2년차 건축사가 됐다. 사무소 개소 후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 일을 받을 수 있을까’였다. 주변에서는 인맥을 쌓는 게 중요하고, 홍보를 잘 해야 한다는 등 아낌없는 조언을 받았다. 사무소를 개소한 건축사라면 모두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고민만 해서는 달라지는 게 없고, 사무소를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달력과 볼
시론
배성재 건축사·배 건축사사무소(경기도건축사회)
2025.11.11 13:44
-
선배 건축사분들의 말을 들어보자면, 경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하지만 신진건축사로서 개소한지 이제 막 1년이 지나가고 있는 필자는 연일 발표되는 침울한 예보들이 두렵기만 하다.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오가는 다소 신세한탄에 가까운 내용일 수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견뎌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짧은 소회를 남겨본다.2025년의 4분기에 들어서는 시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의 경제 상황은 낙관하기 어려운 격변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 침체와 저성장, 저출산이라는 삼중고의 키워드로 사회적, 현실적 문제들이 발현되고
시론
허영환 건축사·건축사사무소 포르마 아키텍츠(서울특별시건축사회)
2025.10.28 16:12
-
최근 건축계는 미래 세대와의 접점을 확장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시 건축학교, 정림건축문화재단의 프로그램뿐 아니라, 천안, 아산, 세종 등에서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 기회는 여전히 수도권과 일부 신도시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문화·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소도시 청소년들은 건축을 접할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현실이다.그래서 지난 여름, 충청남도건축사회와 공주시가 공주시의 청소년들을 위한 건축학교를 기획했다. ‘공주, 처음 만나는 건축’이라는 제목으
시론
김준섭 건축사·비티비건축사사무소(충청남도건축사회)
2025.10.16 09:12
-
설계공모에 당선된 이후 설계자의 계획과 디자인이 초안의 궤도에서 멀어지는 사례가 주변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지침서에 반영되지 못했던 이해관계자의 추가 요구, 예산 조정, 운영 및 안전과 관련한 보완 등 일정 수준의 변화는 이해할 수 있다.하지만 변경의 범위가 계획안의 핵심 개념과 공간 구조의 정체성까지 흔드는 지점을 넘어 사실상 다른 설계안을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당선안이 지닌 이야기와 방향성은 희미해지고 공모의 출발점이었던 “왜 이 안이 선택됐는가?”라는 질문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설계자는 당선안의 변경 과정 속에
시론
조아라 기자
2025.09.25 13:13
-
최근 건축계에서는 민간 건축설계비를 공공 발주 대가에 준용해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배경에는 지나치게 낮은 설계비로 인해 설계 품질이 저하되고, 많은 건축사사무소가 경영적 어려움에 처한 현실 때문이다. 3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민간 설계비는 물가 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사실상 고착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사사무소가 버티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공공 발주 대가를 법으로 준용한다고 해서 건축사들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을까? 건축설계비를 규정 짓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장과 사회이며, 법
시론
소상용 건축사·소아키 건축사사무소 (광주광역시건축사회)
2025.09.10 16:48
-
"자, 이쪽을 주목해 주시겠습니까?" 마술사가 관객의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시킬 때 사용하는 이 말은 놀랍게도 공간을 설계할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건축과 마술. 언뜻 보기에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건축 설계를 하며 마술이라는 취미에 깊이 빠져든 뒤 두 세계가 서로에게 얼마나 많은 영감을 주는지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단순한 흥미로 시작한 마술이지만,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물로 신비로운 현상을 빚어내는 법을 연마하면서 받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시론
소재남 건축사·볼륨앤매스건축사사무소
2025.08.26 13:41
-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한국은 2750년경 소멸한다.”옥스퍼드대학교 인구학 명예교수 데이비드 콜먼은 한국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실제로 2020년 이후 우리나라의 총 인구수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인구 감소 현상은 초저출산, 고령화 등의 원인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한다.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문제는 사회 전반적인, 아주 거대한 담론일 뿐이다.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인구 감소 현상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대조적이다. 한국의 전체 인구는 감소하고
시론
변선화 건축사·이든 건축사사무소(부산광역시건축사회)
2025.08.12 16:36
-
몇 년간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계획과 공간 구성 업무만 담당하던 시절에는 실시도면 제작이나 인허가 절차를 신경 쓰지 않았다. 주어진 설계만 완성하면 그 다음 단계는 늘 누군가의 몫이었다. 그러나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소규모 사무소를 차린 뒤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달랐다. 도면을 열기 전부터 ‘보이지 않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정작 설계를 시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아침에 출근해 책상에 앉으면 이메일을 확인하고, 인허가 담당자의 연락을 받는다. 건축주와 일정 조율을 마친 뒤, 현장 담당자에게 보
시론
변은영 건축사·더문 건축사사무소
2025.07.25 14:31
-
이제 부산에는 노인과 아파트밖에 없는 것 같다. 지인들과 농담처럼 주고받던 말이었지만 농담이 아니라 현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도시 중에서는 비교적 활력 있다는 부산도 어느 순간부터 고령 인구와 대단지 아파트의 밀도가 높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지역 안에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마다 이 도시가 점점 더 획일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 안에서 건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아파트는 계속 생겨나고 있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
시론
전은실 건축사·은솔 건축사사무소
2025.07.10 14:38
-
2025년 1월, 대학을 졸업한 지 아홉 해 만에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경력과 서투른 감각, 미완의 표현력은 개소 직전까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동시에 내 건축을 스스로 찾아보고 싶다는 조바심이 자꾸만 밀려왔다.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도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돌이켜보면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경기가 좋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드물었다. 과연 좋은 시기란 존재할까? 그런 의문 속에서 개소를 결심했다. 명함을 디자인하고, 나만의 레이어 목록을 만들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책도 많이 읽었다. 예전에 근무하던
시론
김주태 건축사·하이어스탠다드 건축사사무소(경기도건축사회)
2025.06.24 13:46
-
필자는 대학시절과 사회 초년생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고향에서 보냈다.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건축사사무소도 고향인 충청남도 금산에 개소했다. 금산군은 해발 400m에서 900m에 이르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금산천과 봉황천이 유입되는 비옥한 분지 형태의 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금산군은 인삼이 특산품이며, 약초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금산군 전체 인구의 약 40%는 인삼농사 및 인삼 관련 가공식품 판매 업종에 종사 중이다. 금산군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지역 건축사’로 일하는 건축사의 현실에
시론
이정연 건축사·종합건축사사무소 리우(충청남도건축사회)
2025.06.10 13:43
-
현재 건축사들의 약 40%는 1인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신입 건축사 대부분은 홀로 사무소 운영을 시작한다. 혼자 사무실을 운영하는 이유는 거창한 철학이나 대단한 신념 때문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제적 불확실성과 사람에 대한 믿음의 부재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이 두 가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프로젝트의 수익은 일정하지 않고 정산까지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어떤 경우에는 끝내 미수로 남기도 한다. 그런데 직원을 고용하면 급여와 4대 보험, 퇴직금 등 많은 유지비가 따라온다. 게다가 이 직원이 업무를 제대
시론
김지혜 건축사·겨루 건축사사무소(광주광역시건축사회)
2025.05.23 13:17
-
최근 건축사신문에 게재된 ‘신입회원들이 말하는 현장 고민과 제도 개선 요구’ 기사를 읽었다. 마흔일곱 명의 신입 건축사는 민간 설계대가 기준 부재로 인한 혼란, 과도한 가격 경쟁, 현장과 괴리된 설계공모 제도, 복잡한 행정 절차, 소규모 사무소 운영의 어려움 등을 대표적인 어려움으로 꼽았다. 그 기사에는 필자가 사무실을 운영하는 5년 동안 느꼈던 어려움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패기 있던 지역 신진 건축사가 업계에 발을 내딛고 시행착오를 겪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 경험을 토대로 필요하다고 느낀 제도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시론
우혜련 건축사·이우 건축사사무소(경상남도건축사회)
2025.05.12 13:25
-
건축은 경기가 아니다. 운동 경기처럼 촌각을 다투며 승부하지도 않고 결승점을 빨리 들어와야 하는 속도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건축은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조금 더 넓게 살핀 뒤 발견한 가능성을 한 곳에 모아 놓는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누르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욕망은 모두에게 있다. 건축, 건축사라고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을 ‘쟁취’가 아닌 ‘성취’를 위해 나아갈 때 건축에서 말하는 진정한 승리가 아닐까 싶다.우리는 멋있는 건축, 아니 ‘맛있는’ 건축을 위해서 요행이나 이기적이 아닌 당당한 건축사로 걸어가야 하는 길을 찾아
시론
송원흠 건축사·세담 건축사사무소
2025.04.24 09:14
-
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 버렸다. 건축 상담을 진행하던 건축주가 메신저를 보내 왔다. ChatGPT 에 주차 방식에 대해 물어봤는데 계획안에도 그 답변이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AI의 답변이 터무니없다는 건 차치하고, 내 역할이 AI 가 제시한 내용을 그대로 실행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건축주를 만날 때마다 AI의 제안은 불가능한 방식이라고 수차례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주는 건축사보다 AI를 더 신뢰하기로 결정한 듯싶었다. 그런 태
시론
최민욱 건축사‧스몰러 건축사사무소
2025.04.08 14:04
-
현재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산업은 무엇일까. 반도체를 만드는 전자업계, 인공지공을 연구하는 IT업계, 전기차를 만드는 자동차 업계 정도가 떠오른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업계는 어떨까. 아마도 일반 국민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다소 구시대적인 분야라고 인식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70–80년대 건설업이 부흥기였을 무렵의 건축 위상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끄는 중추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50년이 지난 지금, 건축업계의 위상은 많이 낮아진
시론
김선동 건축사․오픈 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2025.03.25 15:10
-
요즘 건축업계가 정말 힘든 상황이다. 경기 침체는 계속되고, 정치적 불안정성까지 겹쳐 건축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공모 경쟁은 과열되고, 수익성은 점점 낮아지면서 많은 건축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예 건축업을 지속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 우리 건축사는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를 만들고 사회에 공공 자산을 남기는 전문가라는 점이다. 건축이 경제 논리에만 휘둘리지 않도록, 양심과 책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건축인의 공동 가치를 지키는
시론
이기철 건축사‧(주)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2025.03.12 16:32
-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도 벌써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첫 시작은 다가구 주택의 방 한 칸을 빌려 살던 하숙집이었고 그 뒤로 자취방, 기숙사, 선‧후배가 함께 전세로 빌렸던 작업실 등에서 지냈다. 시간이 더 지나서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방을 구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소위 원룸이라 불리는 빌라(다세대, 다가구 주택)가 학교 근처에 늘어났다. 당시 자취방 월세가 10~20만 원 수준이었는데 원룸의 월세는 30~40만 원 정도였다. 물론 화장실을 서너 명이 함께 사용하는 자취방과 달리 원룸은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
시론
현승헌 건축사‧주.선랩 건축사사무소
2025.02.25 15:11
-
현대건축의 선구자인 르 코르뷔지에는 현대건축 태동기에 인류 사회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가 시민권자로 활동했던 프랑스는 1977년 유럽에서는 최초로 건축법 제1조에 다음과 같이 명문화했다.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 건축적 정조성, 건물의 품격,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자연적 경관, 도시 환경 및 건축 유산의 존중은 공공적 관심사라고.이후 프랑스는 1995년 건설부 소속이던 건축부를 문화부로 개편했고, 현재까지 건축문화유산부(Direction générale des patrimoines et de l'architecture, DGPA)
시론
곽재환 건축사‧주.칸 건축사사무소
2025.02.12 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