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공공성과 문화적 가치 재조명
지자체 건축문화 확산 공로로 진주시, 건축문화진흥 부문 대상 선정

11월 5일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2025 한국건축문화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11월 5일 마포 문화비축기지에서 2025 한국건축문화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국토교통부가 10월 22일 ‘2025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 결과를 발표했다.

1992년 제정된 이 상은 올해로 34회를 맞아 건축의 공공성과 문화적 가치를 확산하는 데 제정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올해 심사는 건축물(공공·민간·주택·한옥)과 건축문화진흥, 학생설계 부문으로 진행됐다. 심사위원회는 완성도, 창의성, 건축문화 기여도, 삶의 질 향상, 환경과의 조화, 건축사의 태도를 기준으로 수상작을 선정했다.

공공부문 대상은 부산시의 ‘주례열린도서관(자인건축사사무소 정대교 건축사, Studio BA 이동규)’이 차지했다. 경사진 대지를 계단형 구조로 구성해 지역의 일상과 자연, 사람을 연결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내부와 외부가 이어지는 공간 구성을 통해 도서관을 지역 소통의 장으로 확장했다.

민간 부문 대상은 판교의 ‘WHITE STRIPE(주.종합건축사사무소 연미건축 인의식 건축사)’가 선정됐다. 금속과 유리의 재료를 조율해 도시 경관 속 빛공해 문제를 해결하고, 건축과 조경의 관계를 조정한 점이 주목됐다. 사옥의 기능을 넘어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열린 공간으로 평가됐다.

주택 부문 대상은 서울의 ‘고덕 어반브릿지(주.시아플랜건축사사무소 조주환 건축사, ㈜전아키텍츠건축사사무소 전이서 건축사)’가 받았다. 고층과 저층의 혼합 배치를 통해 단지의 스케일을 나누고, 중앙의 보행 브릿지를 주민 교류의 축으로 설계했다. 도시와 단지가 이어지는 구조로 공동주거의 방향을 제시했다.

대한건축사협회 김재록 회장이 시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대한건축사협회 김재록 회장이 시상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한옥 부문 대상은 서울 은평한옥마을의 ‘서희재(주.어번디테일건축사사무소 최지희 건축사)’가 선정됐다. 대문을 지나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로 구성된 주거공간은 동향의 누마루를 통해 새벽 햇살과 북한산 자락의 풍경을 담아냈다. 전통 한옥의 구조적 원리를 현대적 생활환경에 적용하고, 전통 창호와 한지를 사용해 한옥의 본질적 미감을 살린 점이 평가받았다.

건축문화진흥 부문 대상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돌아갔다. 공공건축가 제도 도입 이후 목조건축을 매개로 지역 정체성을 구현하고, 시민 참여를 통해 건축문화를 생활 속으로 확장한 점이 인정됐다.

공공·민간·주택 부문과 건축문화진흥 부문 대상에는 대통령상이, 한옥 부문과 학생설계공모전 대상에는 국가건축정책위원장상이 수여된다.


▶ 심사총평 : 건축, 그 예술적 의지와 일상의 울림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의 심사는 도면 위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현장에서 완성되었다. 사흘 동안 진중하게 이어진 현장 답사는 건축이란 무엇보다도 땅과 바람, 빛과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의 몸짓 속에서 비로소 살아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했다. 건축은 완결된 오브제가 아니라, 매일의 삶과 함께 호흡하는 예술이며, 일상의 습관과 공동체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어내는 그릇이다.

심사위원단은 작품의 완성도와 창의성, 건축문화에 기여하는 깊이, 삶의 질을 높이는 힘, 그리고 주변 환경과의 대화 능력을 주요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물음은 따로 있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건축의 언어마저 빠르게 흡수하는 지금, 인간 건축사의 존재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알고리즘이 제시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은 무엇인가? 올해의 심사는 이 질문을 품은 채 진행되었다.

주택 부문에서는 건축주의 꿈과 일상의 갈망을 건축사의 언어로 번역해 낸 섬세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작은 집일지라도, 그것은 한 사람의 삶과 이야기를 담아내는 무대였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주거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이를 건축적 해법으로 풀어내려 한 시도는 더욱 값졌다. 주택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공적의 장이다. 그래서 좋은 집은 건축주의 욕망을 넘어, 우리 모두의 미래를 은유한다.

공공 부문은 '공공성'의 의미를 다시 묻는 자리였다. 기후 위기와 기술 혁신, 불안정한 세계 질서 속에서 공공 건축은 기능적 공유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증언하는 상징적 장소다. 이번 수상작들은 개념적 명료성과 형태의 논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흔히 제도적 한계로 인해 미흡해지기 쉬운 디테일과 마무리의 수준까지 치열하게 밀고 나아갔다. 건축사와 발주자, 그리고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공공성의 무게를 끝까지 견뎌낸 성취라 할 수 있다.

민간 부문은 건축사들의 상상력이 가장 자유롭게 발현되는 영역이었다. 대담한 형태 실험에서부터 섬세한 공간 배려, 새로운 기술의 실험까지, 작품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한국 건축의 다양성과 미래 가능성을 드러냈다. 민간건축은 사적인 소유를 넘어 도시 풍경과 사회적 경험의 일부가 되며, 때로는 문화적 자산으로 확장된다.

심사위원단은 이번 수상작들을 통해, 민간건축이 지닌 창의성과 실험성이 사회적 책임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종합적으로, 올해의 심사는 건축이 여전히 인간의 삶을 품고, 공동체의 희망을 비추며, 기술과 자본의 압력 속에서도 예술적 의지를 지켜내는 행위임을 증명하였다. 그것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직관과 감각, 상상력과 책임에서 비롯된다.

선정된 작품들은 한 해의 성과를 넘어, 한국 건축문화의 지평을 확장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품들이 다음 세대의 건축사들에게 새로운 질문과 영감을 던져줄 것이라는 점이다. 건축이란 언제나 미래를 위한 약속이다. 우리는 그 약속이 더욱 깊고 넓게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공공분야 대상 : 주례열린도서관

주례열린도서관.  (사진=국토교통부)
주례열린도서관. (사진=국토교통부)

주례열린도서관은 지역의 일상과 자연, 그리고 공공의 개념을 섬세하게 엮어낸 건축으로, 경사진 대지의 특성을 건축적 제약이 아닌 가능성으로 전환시킨 사례이다. 건물은 대지의 흐름을 따라 계단식 볼륨으로 계획되었으며, 중심에는 개방된 보이드 공간이 자리한다. 이 계단광장을 중심으로 스킵 플로어가 유기적으로 엮이며, 각 층의 공간이 서로 시각적·공간적으로 연결된다. 이용자는 계단을 따라 오르내리며 끊임없이 시선을 교차시키고, 내부와 외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입체적 공간 경험을 얻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히 공간의 효율을 넘어, 도서관을 지역사회 속 열린 소통의 장으로 확장시킨다.

서측과 북측에서 자연광이 투과되어 들어오며, 목재 마감의 따뜻한 질감과 어우러져 밝고 포근한 실내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러한 자연채광은 보이드 공간을 중심으로 실내 전반에 은은하게 확산되어, 이용자에게 도서관의 중심성과 심리적 안정을 동시에 제공한다. 감성적인 재료의 사용과 색채 계획은 공간의 깊이를 더하며, 책과 사람,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서정적 공간미를 완성한다.

또한 계단식 볼륨이 외부로 확장되며 형성된 테라스 공간에는 다양한 텍스처의 식재와 조경선이 더해져, 자칫 건조할 수 있는 기하학적 구조의 단조로움을 해소하고 주변의 숲과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외부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은 주례열린도서관이 단순한 독서의 장소를 넘어, 지역 주민이 머무르고 교류하는 열린 풍경으로 기능하게 만든다.

결국 주례열린도서관은 경사지와 건축, 사람과 자연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공공건축의 모범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의 흐름, 재료의 감성, 그리고 공공성의 실현이 균형을 이루며, 도서관이라는 유형을 새로운 도시적 풍경으로 재정의한 수작이다.


▶ 민간분야 대상 : WHITE STRIPE

WHITE STRIPE. (사진=국토교통부)
WHITE STRIPE. (사진=국토교통부)

판교의 어느 장소에 새로운 산업을 위한 낯선 건물들이 일시에 들어선다. 현대적인 이미지를 위해 금속과 유리를 주요한 재료로 사용하며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의 완성단계에서는 외벽유리 반사에 따른 빛공해의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외벽의 유리를 통한 일그러진 투영이 도시경관을 왜곡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잡한 도시블록의 틈에 그리 크지 않은 단정한 건물이 들어선다. WHITE STRIPE이다.
건축사는 도시의 이러한 문제를 섬세하게 고려하여 단정한 외관과 계절과 시간에 따르는 작은 변화와 연속성을 현명하게 제안한다. 유리의 특성을 살려 개방과 차단의 정도를 면밀하게 연구하였고 투시를 유지하면서 반사를 줄이는 열관류율의 조정으로 친환경적인 연구 또한 돋보인다.

내부의 실깊이를 감안하는 한쪽이 열린 중정에는 도시의 조형을 고려한 담쟁이 식물의 ‘green wall’을 제안하여 건축과 조경이 함께 건물의 조형을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옥상에는 이용자를 위한 정원이 바람과 소리 등의 오감을 자극하며 건축 안의 새로운 자연을 강조한다.

건물 내부의 환경에도 건축사의 노력이 연속되어 외관에서 보이는 건축사의 의도는 일관되게 내부로 이어진다. 개방과 차단 그리고 은근한 투시가 공간을 다채롭게 구성하며 이용자의 호기심과 창의성을 드러내도록 유도하면서 회사의 사옥으로서의 역할을 정교하게 수행한다. 또한, 특정 회사의 사옥이면서도 공공의 역할을 강조하며 저층의 일부 영역이 인근 주민과의 교류를 통한 지역사회의 winter garden이 되도록 하는 계획이 돋보인다. 이러한 건축사의 노력과 뛰어난 역량을 인정하여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부문 대상으로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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