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맞서 대응할 것인가. 인간이 태초부터 고민해 온 이 질문에 명심보감에서는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라고 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시대의 삶은 단순히 자연환경에 순응하는 삶의 차원을 넘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환경 변화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건설경기 악화는 건축설계시장 위축뿐만 아니라, 건설업계 전체의 위기이며 특히나 자금력과 경쟁력이 약한 지방 건설사의 경우에는 생존의 문제가 된다.
동네 한식뷔페(함바집)와 인쇄소가 하나 둘 문을 닫고 사라지고 있다. 우리 건축사의 삶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처음 사무실 간판을 걸고, 집기를 하나하나 들여놓을 때만 해도 설계계약 건들을 진행하면서 트레싱지에 무수히 스케치를 하고 3D모델링과 모형을 제작하며 밤을 지새우는 날도 많았다.
며칠 전에는 저녁식사 후 다음 학기 강의자료를 준비하느라 사무실에 남아있는데 동료 건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 안 하고 뭐 해?”, “조건축사는 요즘 시국에 일이 많나 봐?”, “일은 무슨.. 다음 학기 강의준비하느라 정리 좀 하고 있지...” 짧은 전화통화를 마치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요즘 회사상황은 학창 시절 밤새워 설계작업을 하면서 꿈꿔왔던 건축사의 삶과는 다른 느낌이다.
얼마 전에 읽은 일본도쿄공업대학교 모토가와 다쓰오가 쓴 책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의 내용 일부를 인용하고자 한다. 코끼리와 쥐는 둘 다 포유류이고 평생 심장박동 수는 20억 번 정도로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코끼리는 70년 정도 살고 쥐는 2~3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단순히 계산하면 코끼리가 더 오래 살지만 심장박동 수를 가지고 계산하면 코끼리와 쥐는 똑같은 심장박동 수만큼 살다가 죽는다는 거다.
포유류의 생체시계는 체중에 비례하여 늦어진다고 하며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심장박동과 호흡의 속도가 느려진다고 한다. 또한 포유류의 크기와 심장박동 수는 체온조절에 반비례한다고 한다. 쥐처럼 작은 포유류는 체온이 빨리 내려가기 때문에 체온유지를 위해 심장박동을 빨리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생명이공학부 교수가 쓴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설계용역 수주 저조로 인해 당장 눈앞에 닥친 사무실 운영난과 직원급여문제 등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여러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은 모두 다른 모습이겠지만 짧은 호흡이 아닌 긴 호흡으로 지금 현재를 돌아보며 ‘쥐의 시간’이 아닌 ‘코끼리의 시간’과 가까운 삶을 살기를 바라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지금 이 순간은 찰나의 순간일 것이며, 다음 순간은 기회의 순간일 것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물론 다음 순간에 찾아올 기회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또는 현재의 시간을 슬기롭게 견뎌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꿈이 될 수 있는 건축사의 삶이기에 환경에 순응하되 창조적인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