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숙 건축사(사진=이종숙 건축사)
이종숙 건축사(사진=이종숙 건축사)

이른 아침 갓 내린 커피를 홀짝이며 창문가에 앉는다. 잿빛 하늘 아래 벤추레이터를 품은 박공지붕이 그리 높지 않게 즐비해 있다. 주황. 파랑. 회색. 녹색 등 지붕색상도 다양하다. 재료는 대부분 샌드위치패널로 되어있다. 그 사이로 거대한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마치 1980년대 공장지대를 연상케 한다. 근거리에 화재로 인해 전체건물이 소실되고 철골의 뼈대만 검게 그을린 채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인명피해는 없었으려나? 철거하고 신축하려나? 생각도 잠시, 멀리 시선을 어지럽히는 녹색의 그물망이 있다. 골프 연습장. 아마도 유명 골퍼가 운영하는 곳이 저곳 이리라.

녹물 자국이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건물도 보인다. 창문의 유리는 거의 깨지고 건물 주변 공지는 풀이 무성하다. 다른 곳으로 이전했으려나? 폐업했을까? 전자이기를 바란다. 한때는 북적이는 공장근로자와 생산품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로 분주했을 공장의 분위기를 상상해 본다. 지난날의 화려함이 사라진 지금의 이 공장은 무엇을 꿈꾸고 있으려나?  

10분~15분 간격으로 수인선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고가를 달리는 소리가 때로 정겹게 들리기도 한다. 공단에 근접한 유일한 대중교통이다. 출, 퇴근 시간이면 공단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셔틀버스에 몸을 싣는 근로자들로 인산인해가 된다. 

이곳은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가 내려다보이는 필자의 현재 사무실 풍경이다.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는 1920년~1921년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남동염전이 1961년까지 (염전매법 폐지) 천일염 생산지역 중 하나로 운영되었다. 그 후 1985년~1997년까지 3차에 걸친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주역이 되었던 곳이다. 이때는 지금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 이었으리라.

한 편에서는 수출품 생산으로 밤낮없이 공장 가동하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고, 자고 나면 새로운 건물이 완공되어 남동국가산업단지를 채워 나갔을 것이다. 도로에는 물류 트럭이 분주하게 다녔을 테고. 그 당시 건축사사무소는 얼마나 바빴을까? 건축사보들은 공장, 상가, 주택설계로 제도판 위에서 연필 가루를 마시며 건축사의 꿈을 키웠으리라. 건축사가 된 그들은 어느 곳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중 일까?

몇 년 전부터 주 도로변 필지에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서면서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의 가로변이 변하는 추세이다. 직주 분리에서 직주 근접으로 기숙사형 주거형태도 함께 지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상황을 말해주듯 창문에 ‘상가임대’ 표지가 크게 붙어있는 건물이 많다.

건물은 거대해지고 그 안을 채우는 소프트웨어는 사라지고 있다. 밤이면 공동화 현상으로 남동국가산업단지는 암흑의 도시가 되어 버린다. 모든 분야의 소비가 온라인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 화려했던 인천 남동국가산업단지의 부활에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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