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교 건축사(사진=(주)에스티에이 건축사사무소)
정민교 건축사(사진=(주)에스티에이 건축사사무소)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던 때, 행정업무에서 난관에 부딪쳐 건축주에게 피해가 갈 상황이 생겼다. 미리 챙기지 못한 자신을 탓하면서 스스로 해결해 보려 애썼지만, 방법을 찾지 못하고 부문장님께 보고 드렸다. 그분은 평소 입버릇대로 무심하게 ‘거 뭣이라꼬’를 먼저 말씀하셨다. 그 정도의 해결책은 이미 갖고 있다는 듯, 혹은 수고했는데 결과가 나빠서 안타깝다는 듯.

정말 해결하기 어려워 여러 날을 고민하다 말씀드렸는데 현황 이해도 하시기 전에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거 아니야 하고 섭섭한 마음이 먼저 일었다.

하지만 그 말씀의 효과가 적지 않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서의 부하 직원이 죽을상을 하고 업무 실수를 보고해 왔을 때 나 역시 ‘거 뭣이라꼬’를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직원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부문장님께 보고 드리던 당시 내 표정도 저랬을까 싶었다. 아, 그때 내가 큰 위로를 받았구나......그분은 내 짐을 덜어주었고 나는 큰 죄책감 없이 그분께 의지할 수 있었다. 또 문제를 해결한 뒤 일의 본질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뭣이라꼬’라는 말에는 ‘나를 믿어봐’라는 함의가 있다. ‘내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니 잘 들어보라’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제삼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 ‘최악의 상황은 아니니 너라면 잘 해낼 거야’라는 믿음의 뜻이 담겨 있기도 했다. 전자는 도와주겠다는 의지이고 후자는 당사자에게 용기를 불어주는 격려가 된다.

사람이건 돈이건 위로는 의지할 대상이 있을 때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런 대상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계기를 통해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게 되고 스스로 답을 찾기도 한다. 상황과 때에 맞는 말 한마디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서 상대의 자존감을 높이게 되는 마법을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일이 풀리지 않아 힘든데 돈 문제로 고통받거나 사람 간의 갈등까지 더하면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이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로 지쳐갈 때 누군가 다치지 않은 게 어디냐, 시간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니냐 하며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 보자. 아주 ‘사소한 일’에 많은 에너지를 뺏기기에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그렇다고 매사를 사소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너무 힘들 때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도 상황을 가볍게 만드는 일이 될 수 있고, 진짜 간단한 문제인데 매몰되어 있는 자신을 한 발짝 물러서서 관찰함으로써 다른 기회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 대상이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많은 건축사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기이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가까이서 힘들어하는 동료를 향해 무심하게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 뭣이라꼬.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