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고 얇은 헌법책을 샀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헌법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몇 달을 보내며, 필자도 시기를 같이해 헌법을 읽기 시작했다. 이는 그전까지 삶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던 헌법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라는 사실을 실감하고, 헌법에 담긴 국가의 이념과 가치를 ‘체감’하며,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의 ‘의무’이며, 이로써 우리의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은 ‘건축’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양적 성장의 시대를 지나, 삶의 질과 가치가 중심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산업화의 논리로 설명되던 건축도 이제 문화와 삶의 언어로 읽혀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인식은 건축물을 소비하는 결과물로, 건축사는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다루는 전문가가 아니라 생산과 기술적 측면의 전문가로 역할이 축소되어 있다.
더하여,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는 건축계의 목소리는 사회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건축 분야의 소위 ‘밥그릇 싸움’이라고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건축의 근간이 되는 법에는 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공적 책임과 사회적 의무는 어떻게 규정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건축기본법과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을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건축기본법 제1조는 “건축문화를 진흥함으로써 국민의 건전한 삶의 영위와 복리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며, 제2조는 “국민의 삶의 질에 직접 관련된 생활공간으로서, 사회·경제 활동의 공적 공간으로서, 그리고 역사·문화유산으로서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구현함”을 기본 이념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와 국민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즉, 법에 이미 건축의 공공적 가치와 건축문화 진흥의 근거가 명시되어 있으며, 국가는 ‘품격과 품질이 우수한 건축물과 공간환경’을 조성하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 창달에 기여할 책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건축물이 가지는 경제적 파급 효과—국격 향상, 도시 경쟁력 확보, 일자리 창출, 부가가치 확대 등을 고려하여, 산업적 관점에서 건축서비스산업의 육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제정되었다.
법 조문에는 건축서비스산업의 발전을 위한 지원, 육성, 연구 및 개발, 건축서비스의 지식재산권 보호,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이 담겨 있으며, 그 목적은 국민 편의 증진과 경제 발전에 있다. 법에 이미 많은 것이 담겨 있었지만, 아직도 실천되지 않고 있다. 헌법을 읽게 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건축 최전선의 건축사들이 법제를 이해하고 체감하지 못하면, 법조문은 앞으로도 공허한 선언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건축사가 법을 체감하고, 그 의미를 사회와 국가에 설명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건축은 공공적 언어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