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시절과 사회 초년생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고향에서 보냈다.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건축사사무소도 고향인 충청남도 금산에 개소했다. 금산군은 해발 400m에서 900m에 이르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금산천과 봉황천이 유입되는 비옥한 분지 형태의 지역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금산군은 인삼이 특산품이며, 약초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금산군 전체 인구의 약 40%는 인삼농사 및 인삼 관련 가공식품 판매 업종에 종사 중이다.
금산군의 이야기를 서두에 꺼낸 것은 ‘지역 건축사’로 일하는 건축사의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경기가 어렵다 보니 건축 경기도 침체됐다. 관공서에서 발주하는 공공건축 사업의 전체 진행 건수도 대폭 줄어 예년에 비해 더욱 힘들다. 지자체 등 관공서가 발주하는 사업의 수가 늘어나기를 바라지만,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대체로 쪼개기 발주가 이뤄지고 있다. 수의계약도 일 년에 한두 건 받을까 말까이다. 입찰이 안 되거나, 수의계약이 없는 상황은 사무소 운영을 어렵게 한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니 가족과 같은 직원들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도 생겼다. 하나둘씩 떠난 뒤 소수의 인원으로 사무소를 꾸리고는 있지만, 직원들을 붙잡을 여력도 없다. 일거리는 부족하고, 나 홀로 일감을 찾고 서류를 챙기는 등 1인 3역을 해내고 있다. 경제가 살아나야 일자리도 늘고, 더불어 지역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
특히 지역에서 건축 행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역 내에 새로운 건축물이 세워지면, 지역 일자리 증진, 상업 활동 촉진 등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편의성도 향상된다. 지역 내 건축물은 대부분 소규모 건축물로, 지역에 대한 이해와 견문을 갖춘 건축사가 지역적 환경과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설계를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소장, 건축사, 설계사 등으로 불리며 상담만 하면 공사를 시작해도 된다고 여기는 건축주가 다수다.
또한 건축사의 역할을 허가를 내는 데 필요한 존재로만 인식하는 점도 굉장히 아쉽다. 건축주도, 시공사도 목소리가 크면 일단 이긴다. 아마도 건축사의 업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읍·면 지역으로 갈수록 도드라진다.
건축사는 지역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직업인만큼,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건축사협회가 나서서 건축사의 업무와 역할 등을 홍보한다면, 지역사회에서도 건축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방송에서조차 건축사가 아닌 건축가, 설계사라는 용어를 혼용해 쓴다는 점이다. 건축사면 건축사, 교수면 교수라고 협회 차원에서 대응해 정정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우리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먼저 건축사의 역할을 알리기 위한 홍보가 필요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