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교 건축사·웨이브 건축사사무소(울산광역시건축사회)
박영교 건축사·웨이브 건축사사무소(울산광역시건축사회)

설계공모에 당선된 이후 설계자의 계획과 디자인이 초안의 궤도에서 멀어지는 사례가 주변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지침서에 반영되지 못했던 이해관계자의 추가 요구, 예산 조정, 운영 및 안전과 관련한 보완 등 일정 수준의 변화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변경의 범위가 계획안의 핵심 개념과 공간 구조의 정체성까지 흔드는 지점을 넘어 사실상 다른 설계안을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당선안이 지닌 이야기와 방향성은 희미해지고 공모의 출발점이었던 “왜 이 안이 선택됐는가?”라는 질문도 설득력을 잃게 된다. 설계자는 당선안의 변경 과정 속에서 제안한 아이디어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이 빈번해지면, 설계공모의 신뢰성과 공공건축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선안과 결과물 간의 괴리감이 생기고, 변경 사유와 과정이 불투명할 경우에는 이해관계자와의 불신이 늘어나며, 반복되는 전면 수정으로 인해 설계자의 의욕 역시 저하된다.

따라서 변화의 필요는 인정하되, 설계 의도를 존중하고 설계 변경 과정을 보호 및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는 한 프로젝트의 아쉬움을 넘어 건축사들의 도전 의지에도 영향을 주는 문제이기에, 현장의 경험을 차분히 모으고 공유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선안은 공모를 통해 사회가 선택한 건축의 출발점이다. 변경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심사 당시 선택의 근거가 흔들리지 않는 배려가 필요하다. 발주처는 무엇을 왜 바꾸려는지, 어디까지 조정이 필요한지 목적과 범위를 먼저 분명히 한다면 논의는 훨씬 간결해질 것이다.

또한 부서마다 다른 요구가 누적돼 방향이 흔들리지 않도록 의사결정 창구를 가급적 일원화하고, 심사에서 중요하게 보았던 평가 기준을 실행 단계에서도 동일하게 유지해야 할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서’, ‘예쁘지 않아서’로 인한 전면 수정은 적절하지 않다. 당선안은 ‘참고 도면’이 아니라 ‘출발점이자 약속’으로서 대우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우리 건축사들도 스스로의 태도에 성찰이 필요하다. 설계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누구를 위해 어떤 변화를 꿈꾸었는지를 명확한 도면과 건축 언어로 남기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설계 개념과 핵심사항을 또렷이 정리하고, 이해관계자와 만날 때마다 그 핵심을 같은 말로 반복해 공유하는 꾸준함이 필요하다. 불가피한 조정이 생기면 이유와 범위, 예상되는 영향을 간단히 기록해 투명하게 열어 두고, 그 조정이 본질을 해치지 않는지 끝까지 점검하고 설득하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설계자의 의도는 보호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목표는 ‘변경을 막는 것’ 그 자체가 아니다. 현실의 제약과 변화의 필요는 인정하되, 변화의 과정 속에서도 계획안의 의도를 지켜내는 일이 우리의 목표일 것이다. 협회는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차분히 모으고, 지역과 유형별 사례를 모아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권고 혹은 그 이상 수준의 가이드라인과 연구 자료를 축적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 자료를 바탕으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음 프로젝트에서 작은 개선으로 이어가야 할 것이다. 공론화와 실천이 맞물릴 때, 설계공모는 더욱 창의의 장으로 기능하고 완공된 건축물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설 것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을 이루듯, 차분한 논의와 우리의 목소리가 쌓일 때 공공건축의 신뢰는 한층 두텁게 자리 잡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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