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실 건축사·은솔 건축사사무소(부산광역시건축사회)
전은실 건축사·은솔 건축사사무소(부산광역시건축사회)

이제 부산에는 노인과 아파트밖에 없는 것 같다. 지인들과 농담처럼 주고받던 말이었지만 농담이 아니라 현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방도시 중에서는 비교적 활력 있다는 부산도 어느 순간부터 고령 인구와 대단지 아파트의 밀도가 높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지역 안에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해마다 이 도시가 점점 더 획일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 안에서 건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아파트는 계속 생겨나고 있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졌다. 사람이 걷지 않고, 골목이 사라졌다. 공공 공간도 무심해졌다. 노령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지만, 그들을 위한 건축물도 여전히 부족하다. 관공서도, 복지시설도, 커뮤니티 공간도 여전히 옛 기준에 머물러 있다. 

설계 현장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예산이 없다, 그리고 기준에 맞춰 달라는 말이다. 발주처는 창의적인 공간보다 안전하고 행정적인 설계를 원한다. 하지만 건축사는 공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다. 이 공간이 버려지지 않고 쓰이는 공간일까, 미래에는 어떤 공간이 될지 등등을 생각한다.

건축사는 설계 도면만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변화하는 도시를 읽고, 사람의 삶을 상상하고, 그 속에서 필요로 한 공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고령화가 가속되고, 도심 공동화와 대단지 아파트 위주의 도시 구조 속에서 건축사가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의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도시 안에 더욱 많아져야 한다. 고령자가 편히 머물 수 있는 동네의 커뮤니티 공간, 아파트에 갇히지 않은 다양한 주거 형태, 오래된 공공시설을 리모델링해 모두가 쓸 수 있는 자산으로 바꾸는 일 등등 다채로운 시도로 도시를 바꿔가야 한다. 이 모든 일은 단순히 도면만 잘 그린다고 가능한 게 아니다.

기획부터 사회적 이해, 예산 조율, 행정 협의까지 건축사가 설계 이상의 역할을 가져야 가능하다. 지역의 가능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 다름 아닌 지역 건축사들이다. 그렇기에 더 많은 지역 건축사들이 공공 정책, 도시 전략, 공간 운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바란다. 업역의 확장은 단지 생존을 위한 게 아니라, 건축이 도시와 사회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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