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헌 건축사‧주.선랩 건축사사무소 (사진=주.선랩 건축사사무소)
현승헌 건축사‧주.선랩 건축사사무소 (사진=주.선랩 건축사사무소)

고향을 떠나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도 벌써 2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첫 시작은 다가구 주택의 방 한 칸을 빌려 살던 하숙집이었고 그 뒤로 자취방, 기숙사, 후배가 함께 전세로 빌렸던 작업실 등에서 지냈다.

시간이 더 지나서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방을 구하는 방법이 달라졌다. 소위 원룸이라 불리는 빌라(다세대, 다가구 주택)가 학교 근처에 늘어났다. 당시 자취방 월세가 10~20만 원 수준이었는데 원룸의 월세는 30~40만 원 정도였다. 물론 화장실을 서너 명이 함께 사용하는 자취방과 달리 원룸은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긴 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비용은 저렴하지만 환경이 열악했던 고시원에 머물렀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돈을 모아 반전세라 불리는 다가구 주택에서 생활했다. 서울의 1인 가구로 결혼 전까지 14년 동안 한 몸 뉘일 곳을 찾기 위해 줄기차게 집을 바꾸고 빌리며 살아왔다


서두의 이야기가 오래된 것 같지만 집을 빌리고 머무르는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예전처럼 주인집에 함께 살면서 머물던 자취방과 하숙집은 거의 사라졌다. 원룸과 오피스텔, 고시원 등은 대학가 주변 학생들을 상대로 방을 빌려주는 사업이 된 지 오래다. 학교 주변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심 내 직장 수요가 있는 지역의 집들은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수익형 부동산으로 홍보하는 일도 당연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산을 가지고 수익 활동을 하는 게 일상이지만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는 쉴 곳을 찾는 일조차 또 다른 역경이다.  

학업을 위해, 직장을 위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삶을 시작하는 수많은 청년들과 이런저런 이유로 어찌할 수 없는 여건으로 집을 빌리며 살아가는 사람들, 또 굳이 집을 가질 이유 없이 어떤 지역에서 집을 빌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건축을 공부하며 보고 느꼈던 수많은 아름다운 공간들을 동경하고 만들고자 하지만, 현실에서 만들어 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특히 주택, 즉 집은 사람에게 너무도 중요하기에 잘 만들어져야 하고, 건축사라면 누구나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누가’, ‘어떻게만들고자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수 있다. 소위 단독주택에서 실제 집을 소유하고 살고자 하는 사람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은 크게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겠다.  

다만 스스로 살지 않고 빌려주는 집을 만들려는 사람과 집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하는 일은 시작부터 힘들다. 빌려주는 집을 만드는 사람의 목적은 때때로 좋은 집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돈을 많이 벌어주는 집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위한 집과 사는 사람을 위한 집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다. 당연히 사람들을 위해 좋은 집을 만들어야 하지만 의뢰자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이 관점에서 건축사의 역할이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낀다. 지금 이 시대에서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 빌림의 공간에 살아갈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건축사 밖에 없다. 건축사는 건물이 만들어지기 전 온전히 그 공간을 상상하며 시뮬레이션해 그 공간과 집의 적정성 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대 수나 방의 크기, 필요 요건 등 수치나 기능적으로 최소 기준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최소의 집을 만들기 보다는 살기 좋은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건축사는 이 시대에서 누군가의 대변인 역할도 필요한 듯하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공간의 소유자는 자산의 가치 여부를 떠나 공간 사용에 대한 질적 우위를 갖는다. 소유자로서 당연히 좋은 공간을 갖고자 할 수 있다. 문제는 스스로 사용하지 않고 빌려주는 공간에 대한 소유자의 인식이다.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공간을 개인이 점유한 물건이나 상품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가진 좋은 공간을 공유하는 방법으로 인식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소유자와 공유자, 우린 더 이상 빌림의 공간에 사는 사람들을 물건을 빌려 쓰고 돈을 내는 임차인이라는 개념보다 소유자로부터 공간을 공유 받는 공유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어떨까. 빌림과 공유의 매칭이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최소한 집에 대해서는 필요하지 않을까.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의 생애주기 관점에서 볼 때 누구든지 빌림의 공간에 머물러야 할 수 있으니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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