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용 건축사(사진=소아키건축사사무소)
소상용 건축사(사진=소아키건축사사무소)

최근 건축계에서는 민간 건축설계비를 공공 발주 대가에 준용해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 배경에는 지나치게 낮은 설계비로 인해 설계 품질이 저하되고, 많은 건축사사무소가 경영적 어려움에 처한 현실 때문이다. 3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민간 설계비는 물가 상승률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사실상 고착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사사무소가 버티기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공공 발주 대가를 법으로 준용한다고 해서 건축사들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을까? 

건축설계비를 규정 짓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장과 사회이며, 법제화가 곧바로 민간 대가의 정상화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건축설계비’가 아니라 ‘건축업무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논의는 신축·증축 설계비에 치우쳐있지만, 실제 민간 건축시장에서 건축사사무소가 수행하는 주요 업무는 용도변경, 기재사항 변경, 행위허가 등이다.  이러한 세부 업무가 건축사의 일상적인 수입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용역비 산정 기준은 부재하다. 각 사무소마다 제시하는 금액은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이를 단순 서비스로 여기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결국 이런 인식이 되돌아와 건축업무 전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협회 차원에서 세부 건축업무 범위별 용역비 산정 가이드를 마련하고, 이를 각 사무소에 교육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초적 업무에 대한 정상화가 이뤄져야만 건축사사무소의 체력이 회복되고, 건축시장의 건강성과 건축계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세부 건축업무는 신축 설계와 달리 결과물이 사무소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표준화가 가능하다. 예컨대 기재사항 변경, 용도변경, 발코니 확장 행위허가 등은 어느 사무소에서 수행하든 동일한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기본 용역비(기본 면적 기준)+추가 면적 단가+도면 제작비(㎡당)+출장비 등 항목별 세부 내역을 체계적으로 정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오히려 지금까지 표준화가 없는 것이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건축사 사회 내부에도 있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 참여자 모두가 만드는 곡선인데, 우리 스스로가 기본 업무를 ‘서비스’라 부르며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려 온 측면이 크다. 이는 노동과 전문성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행위이며, 결국 건축계의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민간 설계비 정상화 논의는 단순히 공공 대가 준용을 넘어, 기초적 건축업무의 가치 인정과 사회적 인식 전환으로 나아가야 한다. 협회의 제도적 뒷받침과 건축사 개개인의 자각이 병행될 때, 비로소 건강한 건축시장과 지속가능한 건축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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