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기본법은 우리 사회에서 건축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중앙정부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구성과 더불어 부총리급 정책위원장을 임명하였고,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의 여러 지방정부는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를 임명하며 공공건축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나라의 도시와 건축을 포함한 건조환경을 비로소 전문가인 건축사의 의견을 받아 조성하겠다는 문화의식의 큰 발전을 이룬 것이며, 건축사의 의식과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 사회가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제 공공에서 도시와 건축에 대한 주요 정책과 과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건축계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며, 훨씬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하여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과거 서울시장이 고가도로를 헐어내고 청계천을 복개하겠다고 발표하였을 때 건축계는 한 번도 제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으며, 서울시청을 새로 건립하겠다고 하였을 때도 시장을 포함한 정책 결정권자들은 아무도 건축계의 의견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총괄건축가를 임명하고 있는 지방정부에서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결정과정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건축의 속성을 잘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부류가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설계업역에 대한 시공사의 허용을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 혹은 이를 사주하고 있는 시공업계이다. 가장 창의적이며 인문학적 감수성을 담고 작업하는 건축을 효율성과 이윤을 가장 전면에 두고 작업하는 시공사에게 허용하겠다는 생각은 과거 설계를 시공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였던 건설기술관리법의 의식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14년 건설기술진흥법으로 개정 이후 건축설계에 대한 내용은 대부분 배제되었다.)
어떤 문화선진국에서도 그러한 혼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만 장인의 기술을 중요시 여기던 목조건축의 전통에 기대어 시공사가 직접 설계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아직까지 이에 대한 건축계와 건설업계 사이에 지난한 논쟁이 있고, 우리나라의 건설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새로운 건설기술은 설계분야에의 환류를 주장할 설계를 위한 기술이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건설사가 설계를 하겠다고 주장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마치 의약분업을 통해서 약의 제조에서 최종사용까지의 ‘과정의 합리화’를 이룬 것처럼 설계와 시공의 분리는 이성적인 상식이자 보편적인 문화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건축을 폄하하거나 홀대하는 부류가 어찌 위의 한두 곳에만 존재하겠는가?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중앙정부의 건축정책과 규정에 개입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임기를 다한 시점에서 이번 기수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했는지 가늠해 본다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의 발언 “우리나라의 건축과 도시의 기획 및 설계에 관한 제반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적극 추진해왔다”에서 그 노력을 읽을 수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현재 여러 지방정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들에게도 그러한 활동에 대해 기대와 함께 당부를 드린다.
건축계는 공공건축가 제도를 통해서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서의 정책과 실행 프로젝트들에서 그들을 임명한 각각의 지방정부와 더불어 건축문화와 설계시스템의 발전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작은 도시 영천에서 이룬 공공건축가의 활동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만들 수 있었는지 확인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전면에 선 소수의 건축사들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잡계인 건축을 제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건축계 전체가 늘 같이 고민하고 논의하여야 하며, 잘 소통하기 위해서 좋은 연대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