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기획‧설계 등 자극적 표현으로 건축사 전문성 해쳐…광고윤리·도리 벗어난 ‘해서는 안 되는 마케팅’ 지적
“건축사 설계·감리 수행 시 설계도서 중요사항 건축주 대면하여 직접 설명 의무화 필요하다” 의견
부산시건축사회 ‘내집’, 건전한 생태계 위한 모범적 건축플랫폼 될 것
최근 건축경기 침체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으로 건축플랫폼에 대한 관심과 접근이 높아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건축물의 초기 구상단계부터 설계, 시공, 완공 후 유지관리단계까지 건축사를 포함한 전문가와의 만남의 장을 제공하는 것이 건축플랫폼의 배경인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라는 전언이다.
하지만 온라인이라는 환경에 놓인 탓에 편법 행위가 끊이지 않고, ‘설계비 0원’이라는 광고를 앞세워 호객 행위를 하는 등 ‘건축사 업무=공짜업무’라는 잘못된 인식을 이용자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축사 수 증가, 모바일·비대면 확대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 시장 확산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정말 좋은 건축문화를 이끌 목적이라면 ‘누군가의 살집을 도려내어 수익을 챙기는’ 비윤리적 마케팅은 자제해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건축사가 설계·감리를 수행할 때 건축주를 직접 만나 설계도서의 중요사항을 직접 설명하도록 하는 의무가 법적으로 제도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높다.
서울시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A 건축사는 “건축과 관련해 정보가 부족한 일반 건축주들이 보기에, 저렴하고 빠른 설계와 시공을 앞세우는 마케팅에 혹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불법 행위와 편법행위로 변질될 요소도 많아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요하고, 불법이 만연화, 양성화 되기 전 선제적인 조치가 있어야 관련 전문가인 건축사에게 쏟아질 불신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설계비 0원, 천민자본주의 영업형태”
실제 비대면 시대에 건축을 희망하는 잠재적인 고객들이 불법 온라인 플랫폼에 접근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이슈가 됐던 온라인 건축설계 플랫폼 ‘착한 건축가’가 일례다. ‘착한 건축가’는 건축사자격 소지자 또는 건축사사무소 개설자가 아니면서도 최소비용으로 평면도와 단면도 등을 제시해준다고 홍보하며 건축사업을 추진했다. 비대면 건축설계 서비스를 건축주에게 어필했고, 99제곱미터 평면도와 단면도 설계비용으로 55만 원이라는 충격적인 비용을 제시했다. 착한 건축가는 대한건축사협회 법적 대응에 따라 사업 전면 백지화가 이뤄졌다.
최근 온라인 건축설계 플랫폼에서 설계비 전액 무료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과 관련해 A 건축사는 “2주간 적산비, 허가비, 전문 설계비를 모두 지원해준다는 광고를 홈페이지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면서 “저작권을 갖는 건축 설계도면이 아무것도 아닌 저잣거리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천민자본주의 영업형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1월 12일 현재 A 건축사가 지적한 H사 건축설계 플랫폼에는 실제 설계‧시공 패키지 구성을 소개하고 있다. 건축의 모든 과정에 H사 전문가의 섬세한 관리가 포함된다고 소개하고 있고, 설계비, 허가비, 전문설계비, 적산비까지 H사가 지원하고, 경쟁입찰과 과스펙 항목 검토를 통해 공사비도 최대 7억 원 절감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소식을 접한 건축사들도 A 건축사와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B 건축사는 “상호 동반성장을 목표해야 할 플랫폼 회사가 설계비를 좌우하는 논리가 맞는 건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H사 관계자는 “신규 서비스 개발과 건축주의 니즈에 대해 깊이 파악하기 위한 서비스개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금번 프로모션을 진행하게 됐다”면서 프로모션의 취지를 밝히고, 설계비 무료와 관련해서는 “프로모션은 당사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해주실 건축주를 대신해 건축사사무소에 설계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이다”고 밝혔다.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프로모션은 2주간 진행되고 최종 건축주 3~5명을 1월 26일 선정해 이들과 함께 건축과정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한편, 최근 부산광역시건축사회(이하 부산시건축사회)는 건축플랫폼 ‘내집’을 구축했다. ‘내집’은 내가 원하는 맞춤형 건축사정보를 열람할 수 있고, 내 집에 맞는 부지정보, 용도, 규모, 요청기간을 입력하면 기획설계(기획업무) 비용 안내뿐만 아니라 내 집을 효율적으로 설계해줄 리스트업을 제공한다.
부산시건축사회 오철호 부산도시디자인연구원장은 “내집은 건축사들에게는 건축주들을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고, 건축주에게는 전문적인 부분을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가인 건축사를 맞춤 제공해주는 역할을 하도록 구축된 것”이라면서 “현재는 시범운영 중이고, 보완의 과정을 거쳐 2월말 정식으로 출범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오철호 원장은 “내집은 개인 또는 기업이 운영하는 플랫폼들이 시장을 교란하는 측면이 있고, 상업적인 측면에서 건축사들을 활용하려는 목적도 갖고 있다”면서 “이런 부분을 해소하고, 만남의 장에 필요한 어떤 수수료도 없이 운영돼 건전한 생태계 구축을 위한 모범적 플랫폼으로 뿌리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