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호 건축사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고 있다. 연일 뉴스에서는 그날의 확진자 숫자로 사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당연해지면서 개인적 또는 사회적 모임은 부담스러운 수준을 넘어 몰상식의 영역이 된 지 오래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경제적 타격만으로도 엄청난데,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어 난감하다.

언론에서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아직 우리 사무소는 민간 업무 몇 개가 늦춰지는 정도의 타격만 왔으나,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어찌될지 전혀 예측하기 어려워서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 하기야 언제는 예측 가능했느냐마는 이번에는 그 결이 다르다.

얼마 전 뉴스에서 베니스에 관광객들이 줄어 수로의 흙탕물이 맑은 물로 돌아왔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런 역설이 나에게도 찾아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당연함이 새삼 얼마나 소중하였는지를 느끼고 있다. 덕분에 일상의 소중함을 더 적극적으로 즐기게 되었다. 요 몇 년을 돌아보면 날씨 좋은 휴일 봄날 꽃을 보러 산책나간 기억이 없다. 벚꽃은 발주처 회의나 출퇴근길 차안에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이었고, 휴일은 집이든 회사든 무언가 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의 연장선이었다. 봄은 언제나 짧아서 고개 들고 나면 푸른 녹음과 반팔 셔츠로 바뀌어 있었다. 기억해보면 나에게 봄은 언제나 짧은 아쉬움이었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내가 뒤늦게 알게 된 걸 좀 나열해보면……. 내가 사는 아파트 조경이 꽤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옆 단지 아파트 조경은 우리보다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조경 대상을 받았다는……. 부럽다) 세종 호수공원이 생각보다 넓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휴일 한낮에는 텐트촌으로 변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에서 5분 거리의 원수산에는 훌륭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고(중간에 습지까지 조성되어 있었다니…….) 정말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었다. 평일에도 괜찮으면 좀 일찍 퇴근해 집사람과 주변을 산책하며 봄을 즐기는 요즘이다.
맥락 없어 보이지만,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자각은 건축에도 닿아서 혹시 내가 사용자들의 일상에 대한 배려보다 내 건축의 특별함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더 신경 쓴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본다.

봄이 항상 좋은 이유는 꽃피는 봄이 오길 기다렸기 때문인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기다린 그 시간들이 다 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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