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화장법
- 문정희

마치 시를 쓸 때처럼
나의 화장법은
먼저 지우기부터 한다

빈자리에 한 꽃송이 피운다

고통이 보석 지팡이가 되고
가난이 장미가 되는 젊음을 불러온다
신비한 샘물이 새로 차오르는
달의 계단을 즐긴다

기실 시법(詩法)은
길이 없음을 알고 있다
길을 만들려고 할 뿐이다
이게 뭐죠?
온몸으로 질문을 던질 뿐이다

오묘한 나만의 이미지와 여백을 만들고
그리고는 누군가 매혹 때문에
한 꽃송이 속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응」문정희 시집
   민음사 / 2014년

길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길을 내고 있다고 생각해야만 어딘가에 닿을 수 있는 게 인간의 속성인 모양이다. 만약 어딘가에 닿은 사람은 정작 본인이 어떻게 거기에 있는 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냈다고 생각하는 길은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쩌면 ‘길이 없다’는 것은 ‘길을 잃다’와 동일한 사건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길을 만들려고 할 뿐이다”는 “그만 길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하는 행위"인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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