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주거 트렌드 전망]

사무공간 갖춘 집에서 업무부터 쇼핑, 온라인 수업까지 한번에
상업용 사무실과 공유주택은 ‘적신호’
주거 취약계층엔 다른 세상 이야기

▲ 시애틀 작은 집에 있는 홈오피스

경기도에 거주 중인 교사 김연아 씨(37) 부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장업무를 비롯해 가사, 육아, 쇼핑까지 집 안에서 해결하고 있다. 김 씨가 근무하는 초등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자 최근에는 창고로 쓰던 방에 책상과 화상 카메라, 마이크 등을 들였다. IT 기업에 종사하는 남편 역시 재택근무 중이다. 그러나 책상을 들일 방이 부족해 임시로 식탁에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아이 방과 침실을 제외하면 당장은 여유 공간이 없어 두 사람의 사무실을 마련하진 못했다”면서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 방이 더 많은 집으로 이사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1인 가구도 상황은 비슷하다. 디자이너 이 모 씨(28)는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면서 근처에 원룸 오피스텔을 얻어 살고 있다. 최근 회사의 재택근무 지침에 따라 집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한 칸짜리 방이 일터며 백화점, 식당, 주방, 영화관이 됐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 씨는 조만간 비싼 벽지를 사서 집을 꾸밀 계획이다.  
  
◆ 업무부터 쇼핑,
   온라인 수업까지 한곳에서,
   올인빌&올인룸 시대 가속화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이 끝나도 세계는 그 이전과 전혀 같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19가 가져올 일상의 변화를 예고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거주자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크게 증가했다. 마침 집에서도 직장업무와 쇼핑, 온라인 수업 등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다양한 산업군들도 빠르게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바야흐로 ‘올인빌(all in Vill)’, ‘올인룸(all in Room)’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올인빌’과 ‘올인룸’은 ‘집 또는 방 한 칸에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피데스개발은 코로나 사태 이전인 지난해 말 ‘2020~2021 주거공간 7대 트렌드’를 통해서 올인룸 시대를 예측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이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탄탄하게 준비된 4차산업기술력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4일 열린 주거공간 트렌드 발표회에서 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은 “AI 등 4차 산업기술로 기존 공간의 용도·기능·분류가 무의미질 것”이라 전망했다.
주거공간의 용도가 확대되면서 가구·헬스기구·레트로트식품 등 다양한 업체들은 집을 꾸미거나 집에서 운동할 수 있는 상품들을 발 빠르게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건축계에서도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P 건축사는 “모여서 살고 공유하는 공유주택보다는 개별적으로 출입하는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최근에는 석 달 치 정도 먹을거리를 비축할 수 있는 업소용 빌트인 냉장고의 방을 만들어달란 요구가 있었다”고 전했다. 앞으로 코로나보다 더 나쁜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데다가 지금도 마트에 가서 사람들을 대면하기가 무섭다는 것이 의뢰인의 말이었다고 한다.
아울러 위생도 주거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다. 서초구에서는 지역 내 모든 주거용 건축물 승강기버튼과 현관 인터폰에 바이러스 향균필름을 부착했다. 소독 또는 검사를 할 수 있는 위생 박스도 개발됐다. 일부 병원과 대형건물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다. P 건축사는 “집 같은 경우에는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수전을 주변에 설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 상업용 사무용 건축물과
   공유주택엔 ‘직격탄’

반면 이런 상황에 대한 반작용도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만든 재택근무 형태가 자리를 잡으면 상업용 사무용 건축물의 수요는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준용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최근 아시아경제에 기고한 칼럼에서 ‘기존 사무실의 유지가 과연 필수적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향후 업무용 공간에 대한 수요는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코로나19로 인한 배달의 확산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쉐어하우스 등 공유공간도 직격탄을 맞았다. 3040 주거공동체를 지향하는 한 공유주택기업은 여러 명이 주거와 업무를 함께 할 수 있는 신규 주거단지 오픈했으나 입주자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러 기업들이 입주해있는 공유오피스들도 사용자 감소와 수익률 하락을 우려하면서 코로나 감염 예방에 긴장한 모양새다.

 ◆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공간도
    돌아봐야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리는 곳도 있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에 사는 주거 취약계층들에게 4차 산업기술이나 올인빌 같은 말이 현실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현실이다. 정부에서 추산한 수만 해도 이들은 228만 명이 넘는다.
국토부는 최근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이주 및 재개발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은 최근 한겨레에 낸 기고문을 통해 ‘감염병 대유행과 경제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는 지금, 취약계층의 안전과 삶의 질 향상에 가장 먼저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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