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에 올라간 연유로 절친한 벗도 만날 겸 북촌에서 종로로 걸었다. 골목, 골목을 지나면서 동네(洞內)에서 느껴지는 인간미 있는 푸근함이란… 옛 정치에 새삼 감상적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정치에 빠져 유년시절을 회상하기도 전에 원룸건물과 차들로 점령된 골목길로 마음마저 삭막함으로 굳어졌다.

지금의 도시 주거형태는 다가구주택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베이비부머(Baby-Boomer) 세대의 은퇴로 인한 노후대책의 방안, 1990년대 지가(地價) 상승과 더불어 단독에서 공동주택으로 재건축이 빈번히 행해진 것에 기인된다. 그러나 인구증가로 인한 주택개발, 즉 수요에 따른 공급 개념만으로 접근하여 현재와 같은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내 생각을 감히 말하자면 빈번한 재건축을 진행하기 전에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주차장 확보이다. 현재 형성되고 있는 다가구주택들을 돌아보면 1층 필로티(Piloty) 형태의 주차공간 확보는 정형화된 지 오래다. 그리고 폭 2.0m 도로가 대지에 접해야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도로 폭이 2.5m가 되지 않으면 차량통행이 어려워 건축허가(다가구주택)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맹지의 개념이 바뀌었다(맹지란 - 도로에 접한 부분이 없는 토지). 차량의 출입이 곤란한 부지가 곧 맹지이다. 즉 주차를 위한 건축인지, 사람을 위한 건축인지 혼란스럽다. 주객이 바뀐 건축설계를, 어딘가 불합리함을 느끼면서도 우리는 무심히 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건축에 人보다 車가 우선시 되고 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법규상 도로 폭 2.0과 2.5m의 차이는 국토해양부의 건축담당부서와 주차담당부서와의 소통부재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골목길에서는 주차로 인한 이웃 간의 갈등조장과 차량매연, 소음 등 기타 주거환경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되고 있다. 또한 우리네 유년시절 놀이터였던 골목길은 생명을 위협받는 공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차량들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정다워야 할 길에 CCTV만 설치한다고 해결 될 것인가? 그 대안으로 마을 공동주차장 빌딩이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차장 건물 내 부대시설, 근린생활시설 등을 입주시켜 주민들의 소통의 장을 형성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중앙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제공해야 한다.

집을 짓고 싶은 사람이 왜 반드시 주차와 조경공간을 의무적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이는 도시기반시설이기에 국가와 지방정부가 마련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도시설계구획, 토지구획정리지구, 택지개발지구, 지구단위계획구역에서도 또다시 주차장과 조경설치를 법으로 요구함은 이중부담이다. 과거에 토지세는 생산되는 곡물을 기준으로 일정세금을 거두었으나 지금은 토지세와 건축물세를 이중과세 하고 있다.

모순된 건축환경을 21C 선진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시점에서 건축사가 순응보다는 국민의 편에서 개선토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따라서 ‘건축청 설립’을 가시화하여 각 부처별 건축행위와 지방정부의 남발된 공약이행에 따른 건축물 조성을 점검, 조정 할 수 있도록 컨트롤타워 역할이 필요하다.

건축사가 직업상 창의적 건축물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성숙한 사회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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