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하요우 고자이 마스!(おはようこざいます)”

인솔하는 교사의 지시에 따라 큰 목소리로 우리 일행을 향해 아침인사를 했다.

북해도의 아이누족 마을은 일본정부가 원주민들을 보호하고 사라져가는 그들의 전통적인 삶을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알리기 위해 특별히 만든 곳이다. 용인의 민속촌이나 제주도 민속마을처럼 말이다. 우리가 아이누마을 홍보관을 막 들어설 무렵 노란 깃발을 맨 앞에 든 아이를 따라 대오를 잘 갖춘 일단의 아이들이 모두 모자를 쓰고 무리지어 입장하고 있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를 졸업 할 때가 되면 졸업여행을 한단다.

아이들은 인솔교사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흐트러짐이 없어보였다. 이 아이들이 정말 초등학교 학생들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질서정연했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우리나라 또래 아이들의 자유분방함과 예의 없음을 빗대서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솔교사의 지시에 따라 아이들은 열심히 듣고, 메모하고 원주민과 함께 놀이도 하며 체험을 즐겼다. 그 모습들이 너무 점잖아서 아이들다움을 잃은 것 같기도 했다.

기러기는 맨 앞의 대장 기러기의 경험과 판단에 따라 방향이 결정되듯이 무리속의 개체는 자신을 들어내기보다 리더의 신호에 따라 반응하면 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전후 일본의 제국주의는 걷 모양은 청산이지만 내면은 여전히 변한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복이 모자로 바뀌었고, 전범(戰犯)과 같은 대장 기러기들이 깃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삿뽀르는 일본의 5대 도시 안에 드는 큰 도시이다. 메이지유신이후 본토주민의 계획적 이주를 통해 개척된, 말하자면 신도시 격이다. 일찍이 동계올림픽을 치루면서 주목받는 국제적 관광도시로 변모하고 있었고 눈과 온천은 이도시의 상징이다. 잘 구획된 시가지는 연결성이 뛰어나고 도심과 외곽의 스카이라인도 균형있게 개발된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건물들이 어쩌면 네모상자를 모아 놓은 것처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지 놀랐다. 도심지의 상업용 건물들은 토지의 고도이용이라는 측면과 기능상 업무용이라는 특성상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들이 낯설거나 삭막 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디를 가나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주거용 건물들 말고도 시내를 돌아다니는 차를 보아도 박스형 디자인을 한 차들이 대부분인데 거의 모두가 일본산 차들이었다. 콘테이너를 쌓아놓은 듯 한 주거용 건물 사이로 박스형 차들의 주차된 모습을 보면서 일본사람들의 직각에 대한 집착이 남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선과 직각은 군대에서 신봉하는 문화가 아닐까 싶다. 잘 다려진 제복의 날선 줄과 연병장에서의 사열과 분열의식은 모두가 선과 직각에 대한 표현방식이다.

개척에 의해 단기간에 신도시로 개발된 삿뽀르시는 주민들의 선호나 의사보다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개발되면서 개성을 상실한 듯 보였다.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대지위에 콘테이너 박스처럼 들어선 건물들을 보면서 날선 직각들이 그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 찌르고, 베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2010년 일본NHK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연간 32,000여 명의 노인들이 지켜보는 가족없이 홀로 죽는 무연사회(無緣社會)가 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날카로운 직각의 문화가 시민들의 마음을 닫게 하고 메마르게 하는데 일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건축에 있어서 곡선이 주는 부드러움과 변화의 미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여유롭게 한다. 한옥의 곡선미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일본 어린이들의 일사분란함과 직각의 문화를 보면서 일본의 쇠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단의 힘이 강했던 일본은 제국주의문화와 규격문화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근대화의 원천이 되었지만 집단주의는 개인의 창의와 자율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변화에 둔감하고, 모험을 즐겨하지 않는 속성으로 인해서 상전벽해가 조석으로 가능한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잘 맞지 않는 문화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일본정신은 바로 집단문화에서 온 것이다.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기업들이 문 닫거나 이류기업으로 내려않는 일본이지만 영토에대한 집착은 대단했다. 관광객에게까지 북방영토 반환을 촉구하는 연명서를 받는 모습이나 서울까지 와서 위안부할머니 동상에 말뚝을 박는 저급한 사무라이 근성을 보면서 제국주의의 일본의 야망은 여전하고 자라나는 세대들도 변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일본열도가 전기절약을 위해 호텔의 냉장고 코드를 뽑거나 환풍기의 회전속도를 조절 하는데 까지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일본은 맵다는 생각이 들었다. “꺼진 불도 다시보자”는 구호가 아니라 진리이다.

*이글은 필자가 2012년 7월부터 14일까지 일본 북해도지방(하고다테, 오타루, 삿뽀르) 지역을 돌아보고 그 소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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