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길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도 있지만 만들어가야 하는 길도 있다. 만들어져 있는 길을 가기란 새로 만들어 가는 길 보다 훨씬 쉽고 편하다. 남들이 걸어 간 모양새를 곁눈질로 슬쩍슬쩍 흉내 내어 가도 정신만 차리면 심하게 비틀거리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남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낸다거나 좁고 험난한 길을 넓히고 고치며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은 가보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개발에 따르는 성취감도 있지만, 미개척 세계에 대한 갈등과 두려움, 위험 또한 도사리고 있다.

움직이는 모든 동물은 길을 만든다. 한번 지나쳐도 길이 될 수도 있지만 대개 여러 사람이 여러 번 지나가야 길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잘 다니던 길도 뜸 하면 잊혀진 길이 되어 없어지는 수도 있다. 더 빠르고 편한 새로운 길이 생기면 그때까지 오래 동안 정들고 아끼던 길도 옛길(구도)이 된다. 그래서 신작로가 개통 되면 곡선으로 굽이돌던 길들은 옛길이 되어 인적이 드물고 풀들이 무성하게 되어 길은 묻히고 잊혀지는 것이다.

길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그래서 흔히 길을 인생 역정에 비유하기도 한다.

“단풍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갈 수 없어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 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 중략 -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 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이 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이란 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제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월, 녹음이 계절의 절정을 뽐내는 듯 싱그럽다 못해 답답하다. 울창한 인생의 밀림에서 올바로 제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 바르게 방향을 잡고 열심히 길을 만들며 달려 온 것 같은데 돌아보면 아득히 길은 지워지고 원하지 않은 잡초만 무성하다. 오십도 채 못 채우고 산업사회에서 퇴출당하는 요사이 주변을 돌아 볼 때 제 길을 찾아 길을 내며 살아가기란 사막을 낙타 없이 걸어가듯 무척 고단하고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 남녀 삶의 평균연령을 80살로 잡는다고 할 때 무더기로 퇴출당하는 오십의 나이는 배우고 닦은 견문을 한창 표출할 절정의 시기이다. 그러나 길 밖으로 밀려 나 비틀거리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을 힘없이 지친 발걸음으로 떠밀려 가는 실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내어 가는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또한 아름답다.

편리와 빠른 길만이 길의 효용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면 때로 빠르고 너르게 잘 닦혀진 길보다 산모퉁이를 휘돌고 밭둑을 따라 꾸불꾸불 올망졸망하게 난 길이 더 그리울 때가 있다. 조금은 돌아가더라도 전체를 둘러보며 완상할 수 있고, 질러가는 직선의 빠름 보다는 휘돌아 치며 숲으로 굽어드는 곡선의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깔고 가는 길이 아름답다. 모두가 사람이 살아가는 일. 사람냄새가 나고 사람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새삼 그립다. 강물 따라 휘돌아 굽어가는 순리의 강길이 새삼 아득하게 눈에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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