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하나의 트랜드가 되어 사회전반으로 논의되고 있는 개념 중에 통섭이란 것이 있다. 통섭(統攝, Consilience)은 ‘큰 줄기’라는 뜻의 統과 ‘잡다’ ‘쥐다’라는 뜻의 攝을 합쳐 만든 말로서 ‘큰 줄기를 잡다’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사전은 ‘전체를 도맡아 다스린다’고 정의한다.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한데 묶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내고, 서로 다른 요소 또는 이론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단위로 거듭남의 과정이다.
작고 사소해 보이는 건물이라 할지라도 복합적인 사고과정과 이에 따르는 각 분야와의 협력을 통해야만 탄생시킬 수 있는 건축사야말로 통섭형 인간이 되어야할 것으로 생각되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공학부 최재천교수가 통섭형 인간을 위해 차려놓은 ‘통섭의 식탁’이란 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띈 메뉴는 디저트에 있는 위대한 사상가 다윈의 자화상 -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라는 책이다. 정신 차리지 못하도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과 우리 업계에서 생존경쟁, 적자생존, 도태라는 진화와 관련된 무서운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던 때문이리라.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힘에 겨워 이제부터의 삶은 모든 것에서 하향곡선을 그리며 노화(老化)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했는데 진화라니, 나이 들어가면서 더 나은 상태로 변하여 바뀌는 일이 가능한 걸까? 지난 천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한사람인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 호기심에 바로 책을 주문하여 읽게 되었다.
원제는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win’으로 말 그대로 찰스 다윈의 자서전인데 옮긴이의 우리말 제목이 탁월하다. 독일의 한 편집자의 부탁으로 쓰게 된 이 책은 소년시절부터 대학시절 그리고 종의 기원을 집필하는 계기가 된 비글호 항해와 그 후의 연구과정과 삶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사와 사물에 호기심과 흥미가 많았던 그는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학공부를 하다가 원하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 한 때 성직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식물학교수 헨즐로의 주선으로 파타고니아, 칠레, 페루 연안 등지의 해상지도를 작성하는 임무를 띤 비글호에 탑승하게 되어 자연과학자로 성장하게 되는데, 22세 때 비글호항해로 시작된 그의 연구는 50세에 ‘종의 기원’을 출판하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 해인 72세까지 계속된다.
살아있는 생명체에 호기심이 많았던 소년이 위대한 자연과학자로서 성숙해가는 삶의 과정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은 그의 삶을 서서히 진화하게 한 것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집요한 관심과 과학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라는 것이다.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만이 삶을 노화가 아닌 진화의 과정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드는 대로 맥 놓고 있다 보면 몸도 생각도 굳어지게 된다. 몸과 생각이 굳어지면 관심도 열정도 사라져간다. 굳어지지 않는 몸을 위해 유산소운동, 근력운동, 유연성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처럼, 굳어지지 않는 생각을 위해 지나간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전공분야에 대한 새로운 지식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지고 다윈선생님이 나이 들면서 잊고 살아 아쉬워한 시와 음악도 즐기며 내가 선택한 일에 관심과 열정으로 몰두해 나갈 때 나의 삶도, 나의 건축도 서서히 진화해 갈 것이다. 변곡점을 지나 노화한 내가 아니라 서서히 진화하여 최선의 내가 되어 맞이하는 내 삶의 마감을 꿈꾸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