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소위 아웃사이더였다. 건축을 한답시고 절간처럼 적막한 사무실에 처박혀 연필만 긁적이고 있었다. 건축계획과 설계에 전념하는 것만이 건축사의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건축사의 사회참여는 로비, 접대, 아부, 청탁 등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치부했었다. 하물며 협회조차도 기득권을 향유하기 위한 집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여 배척했었다. 가장으로서 경제적 책임도 다하지 못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성만을 고집하며 고고한 척 했었다. 그리고, 내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며 자만의 늪에 빠져 있었다.

후훗! 현재와는 너무도 다른 몇 달 전의 모습을 상상하니 쓴웃음이 절로 난다.

그러던 중에 광주ㆍ전남ㆍ전북 건축사회가 공동으로 발행하는 ‘건축문화사랑’의 창간에 참여해 줄 것을 권유받았다. 그때도 망설였다. 과연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가? 내가 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망설임이 체 끝나기도 전에 주위의 강력한 권유로 발을 담그게 되었다. 아니, ‘건축문화의 대중화와 정보의 교류를 위한 소통과 공유의 장’이라는 창간 목적이 평소의 내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에 마지못한 척하며 동참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그 일로 인해 아웃사이더 생활을 조금씩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취재를 핑계 삼아 여기저기를 기웃거렸고, 편집을 하면서 동료 건축사들과 친분도 쌓아 갔으며, 협회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살이에 점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건축사로서의 사회적 책무가 생각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것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소 힘겨웠지만 보람을 즐기며 평소처럼 성심을 다해 ‘건축문화사랑’ 발간에 힘을 보탰다. 그러던 중, 금년 3월 10일부로 ‘편집인’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후훗! 나이가 적지 않기에 예의상 권한 것을 주제 파악도 못하고 덥석 물고 말았다.

그런데 일이 겹쳤다. 한국농촌건축학회 활동과 몇몇 마을정비사업에 참여했던 경험을 빌미삼아 지난 2월경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 총괄계획가 모집에 응모했다. 새롭게 깨닫기 시작한 건축사의 사회적 책무와 농어촌에 대한 그동안의 관심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모집인원 7명(경기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각 도별 1개씩의 시범사업지구)에 지원자는 65명이었기에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최종 선정자 명단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건축, 조경, 환경, 농어촌개발,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된 총괄계획가는 대학 교수 5명, 민간연구소 소속 1명, 건축사 1명이었다. 현직 건축사로서 유일하게 선정된 것이다. 즉,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건축사를 대표하는 격으로, 전라남도를 대표하는 격으로 진도군 금골권역 종합정비사업의 총괄계획가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후훗!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맡고 보니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아웃사이더의 생활을 청산하기 시작한지 겨우 2년여. 그 전에는 우리사회에서 건축사들이 해야 할 일들이 이렇듯 많은 줄은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도 모르는 것처럼 건축설계업무 외에 책임져야할 일들을 너무 많이 맡아버렸다.

하여 최근 들어 일에 대한 버거움 때문에 잠을 설치곤 한다. 과연 내 능력이 그러한 일과 역할들을 수행해 낼 수 있을는지 심히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일 하나도 포기할 수도 없고, 포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이 주어진 운명이고 사명이라면 묵묵히 최선을 다할 뿐이다. 가족과 동료 건축사들의 응원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후훗! 일에 대한 중압감이 너무도 부담스럽지만,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억지웃음으로 나를 달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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