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에 실리는 시론의 논제를 보면 건축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주제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어려운 현실 속 지자체의 각종 심의가 사업일정에 영향을 준다하여 언론에서는 심의위원을 ‘슈퍼갑’이라는 단어로 비유하기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심의가 인‧허가의 발목을 잡는다는 푸념은 오히려 옛날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자체 심의기구에서는 어려운 건축계 현실을 감안하여 비상식적으로 객관적인 사항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각종 심의에 유연한 태도를 보이며, 사업일정에 차질을 초래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게 오늘의 끈끈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2월 22일 온실가스 감축과 녹색건축 활성화를 위한 종합․체계적인 추진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을 제정. 공포하였다고 밝혔다. 20세기 말부터 급속히 불거진 친환경건축에 대한 관심은 녹색성장이라는 국가적 정책 방향과 함께 맞물리면서 현재 많은 인증제도를 양산시켰다. 물론 모든 건축물이 이러한 인증제도의 대상은 아니지만 각 지자체별로 친환경 및 에너지절약에 대한 가이드라인 등을 제시함에 따라 일정 규모와 용도의 건축물인 경우, 적어도 한, 두 개의 인증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는 2002년 시안을 마련, 2005년「건축법」개정을 통해 법적 근거가 마련된 이후 현재 친환경 건축물의 양산의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개정, 시행예정인 친환경건축물의 인증대상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친환경건축물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건축주를 대신하여 인증을 진행하고 있는 설계자로서 이러한 제도는 환경을 생각하는 자발적인 참여의 상식적인 의미보다는 강압적인 반상식적인 제도로 와 닿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국가에서 지정되어 운영 중인 친환경건축물을 평가기관은 현재 4 곳 (LH공사,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크레비즈큐엠, 한국교육환경연구원 )이다. 최근 3년 내에 인증기준 강화와 범위가 확대되다보니, 각 인증원에서도 업무량이 과중되어서 업무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개월씩 무작정 지체되는 심사기간에 대한 애매한 입장과 평가항목에 대한 각 인증기간마다 해석상의 이견차이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지난 2011년 9월 26일 인증기관에서는 인증기준 해설서를 배포, 동년 10월 1일을 기준으로 전면 시행됨을 공지하였다. 단 4일간의 유예기간을 두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법규가 제정 또는 개정될 때 이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적정한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인증기관의 처사는 횡포일 수밖에 없다. 장기간의 노력 끝에 결실을 맺은 건축물을 하나의 공산품과 같이 취부 하여 평가기준을 적용한 후 단 4일간의 유예기간을 적용 건축허가를 취득한 건축물의 설계변경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시 요구할 때는 건축사로서 회의를 느낀다. 이러한 사항에서도 설계자는 시간에 쫒겨 하소연할 곳도 없고 인증원 앞에서는 약자일 수 뿐이 없다.
친환경건축물 인증 신청 시 건물의 면적에 따라 인증심사 수수료를 작지 않은 몇 백 에서 몇 천 만원까지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인증기관의 이러한 처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하지만 설계자가 건축주를 대신하는 대리인인 만큼 행여 인증을 신청한 건물에 피해가 생길까봐 인증기관의 횡포에 당당히 의견제시도 못하는 것이 지금 건축사가 걷고 있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이 이 곳 저 곳에서 생겨나다보니 연면적을 인증 기준 면적 미만으로 설계하여 인증을 받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는 건축주와 건축사도 우리 주변에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정부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의 녹색정책에 발맞춘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 등 새로운 법의 제정이 시급하고 중요할 수 있겠으나, 기 시행되고 있는 관련 인증제도에 대한 검토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 시행되어 자리를 잡았다고 하는 친환경건축물 인증제도도 이와 같은 많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다양한 건축물 인증제도를 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반드시 이러한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늦었지만 지금 시점에서나마 기 인증된 인증원기관의 실질적인 관리 감독을 먼저 하는 것이 ‘녹색건축물 조성지원법’의 가장 우선적인 실천인 듯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