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라이프 사이클이란 말은 '상품이 시장에 등장하여 매상이 끊어질 때까지의 과정'이란 경제용어나 보험설계 등에 자주 쓰이지만 원뜻은 출생에서 사망까지 인간의 생활주기를 말한다.
필자의 학창시절 강명구 교수께서 '너희들은 건축학도로서 내가 못한 일 즉 라이프 사이클에 맞는 자신의 집을 설계하여 지어보라'고 하였다. 자녀계획에 맞춰 설계를 한 후, 신혼부부일 때는 둘만 사는데 필요한 부분만 짓고, 자녀들이 태어나면 그 때마다 그들을 위한 방들을 늘려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러한 꿈은 이루지 못하고 다시 제자들에게 은사의 말씀을 되풀이하고는 있지만, 나의 라이프사이클과 주택의 라이프사이클을 맞춰 일생을 한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참 멋진 일임에 틀림이 없다.
20수년 전 교사부부의 라이프 사이클에 맞는 주택을 설계하게 되었다. 그들은 시골태생답게 전원주택을 꿈꿔 자곡동에 부지를 마련했는데, 현관에서 지하층과 다락방을 모두 계단으로 연결하였다. 지하층은 세를 주어 외출 시에도 안전을 도모하며, 다락방은 두 자녀가 쓰다 분가하면 임대하고, 1층의 모친방도 사후에는 현관에서 문을 내어 세를 주며 부부는 안방만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사람에 비해 집이 크면 집에 사람이 눌리고, 빈방이 많으면 가세가 기운다는 선조들의 오랜 경험과 노후의 재테크까지 감안한 계획이었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건축물의 생애관리시스템을 가동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건축의 기본계획 및 심의에서부터 ‘건축허가 사용승인’ ‘성능유지 용도변경’ ‘수명종료 철거’까지 모든 과정에 걸쳐 건축물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홍역, 볼거리 등 각종예방접종을 하며 성인과 노년에도 그에 맞는 암을 비롯한 각종 검진을 통하여 병을 예방하고 있다. 또한 자동차도 엔진오일은 물론 휀 벨트 등 모든 부품을 주기에 맞춰 교환함으로서 최상의 컨디션과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한 개인이나 한 가족의 몸과 차랑도 이럴진대, 불특정 다수인이 사용하는 건물이, 더구나 전 건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소형건축물이 사용검사 2년 뒤부터 방치됨으로써 가져온 피해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제라도 서울시에서 매뉴얼에 의해 체계적 관리를 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며, 전국적 시행으로 인명존중사회가 빨리 실현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