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연금 사업의 부활이 추진되고 있다. 사회의 노령화, 부의 양극화 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건축 시장의 불황과 더불어 건축사들의 노후 대비가 필요한 시점에서 추진되는 건축사연금 제도는 이미 1986년부터 1998년까지 시행됐었다.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금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등 당시와는 사회적 상황이 많이 다르지만 건축사들의 노후 생활에 대한 대한건축사협회의 고민이 엿보인다.

연금과는 좀 다르지만 과거 조선시대조정에서는 흉년 때 부호들에게 사재를 덜어 빈민을 구제하라고 권고하였는데 이를 ‘권분(勸分)’이라 하였다. 독조(督 )도 같은 뜻인데, 조(糶)는 쌀을 판다는 뜻이니 역시 곡식을 내놓게 독려한 것이다. 최근 들어 회자되는 ‘초과이익공유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성종 16년(1485) 큰 흉년이 들자 조정에서는 ‘주현관(州縣官)에게 명해 곡식을 감춘 자를 찾아내 그 식구가 먹을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빈민의 목숨을 잇게 했다’는 성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권분이 강제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때도 있었다. 숙종21년10월 부호군(副護軍) 조형기(趙亨期)는 응지상소에서 왕실 소유 내수사 물건의 절반과 왕실이 받는 공물의 절반도 진휼 자금으로 돌리라고 주장했다. 정작 민간에는 권분을 권해 놓고 숙종 자신은 사재를 내놓는 데 인색했음 지적하는 상소다.

건축사연금제도의 추진이야 좋지만 대한건축사협회 자체가 어떻게 고통을 분담할 것인가가 빠진 채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문제다. 기금의 조성방식으로 설계비의 협회 수납, 도서등록제의 부활, 감리비의 협회 수납 등을 비롯해서 기타업무, 즉 감정업무비, 각종 환경조사업무 용역비, 시설유지관리업무 용역비 등의 징수 및 납부 등을 제안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 협회는 이를 뒷받침할 인적, 물적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비용이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회원들의 몫이다. 제도를 만들어 놓는 것만이 협회의 역할이 아니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도 중요하다. 설계 시장의 붕괴 등으로 고통에 시달리는 건축사회원들은 불안한 미래를 위해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정책을 결정하겠지만 2012년 대한건축사협회 예산안을 보면 정작 협회 집행부 자체의 고통분담은 보이지 않는다.

“비용 절감은 궁위(宮闈․대궐)에서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여긴 정조의 의지가 대한건축사협회 집행부에 요청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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