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산행은 3년 전부터 준비를 했다. 12명의 대원 중 건축사는 나를 포함하여 3명이 함께했다.
▲13일 인천공항-방콕 ▲14일 나이로비-탄자니아 국경 아망가-킬리만자로의 거점도시인 아루샤에서 1박 ▲15일 드디어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당도하였다. 열대우림지대를 지나 2,700m 고지의 만다라산장에서 원숭이들의 장난치는 소리를 들으며 산중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이날부터 고산증(폐수종)을 예방하기 위해 이뇨제인 다이아목스를 아침저녁으로 복용했다. ▲16일 열대우림지대를 통과하여 고산식생대로 접어들자 시야가 넓어졌다. 오후 4시가 되어 해발 3,720m의 호롬보 산장에 도착했다.
▲17일 오늘은 고산에 적응하기 위해 근처의 마웬지봉 삼거리(4,100m)까지만 다녀와 점심을 먹고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18일 오늘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을 한다. 큰 문제만 없다면 내일 아침이면 정상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침식사 중에 구토가 나왔다. 고산증에 걸린 것이다. 호롬보 산장을 출발하여 키보 산장으로 향했지만 고산증이 심해져 하는 수 없이 가이드 한 명과 함께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녘에 잠이 깨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이대로 주저앉아 대원들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19일 아침, 가이드에게 다시 정상에 올라가야겠다고 말하니 그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킬리만자로에 오를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일 수도 있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고 설득하여 200달러를 더 주기로 하고 정상을 향해 다시 출발했다. 키보 산장을 지나 처음에는 완만하던 길이 점점 가파르고 바닥은 흙과 자갈로 덮여 있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푹 빠지며 밀려난다. 길이 가파르다 보니 지그재그로 오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가능한 한 위는 쳐다보지 않았다. 위를 보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가질 것 같아 힐끗힐끗 위를 보며 가이드 발뒤꿈치를 따라 올랐다.
한스마이어 동굴을 지나 드디어 길만스포인트(5,681m)에 올랐다. 오른쪽으로 분화구가 내려다보이고 저 너머 만년설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저 멀리 정상이 보이는 듯하다. 금방이라도 오를 것 같다. 눈과 얼음길을 엣지스텝으로 조심스레 올랐다. 자칫 미끄러지면 저 아래 계곡으로 곤두박질칠 것 같았다. 가이드도 잔뜩 긴장한 듯했다. 한참을 더 오르니 스텔라포인트다. 이제 정상이 손에 잡힐 듯하다. 흙길을 오르다 정상 가까이에서 윈드재킷과 오버트라우저를 꺼내 입었다. 마지막 어렵지 않은 길을 따라 오르니 저 앞에 정상 표지판이 보인다. 오후 5시 15분 드디어 우후루피크(5,895m)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흙으로만 덮여 있고 만년설은 저 아래 단애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과거에는 정상까지 만년설이 덮여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의 눈은 녹아 없어지고 만년설은 정상을 벗어나 아래쪽으로 서서히 밀려난 것 같다. 오히려 정상보다 저 멀리 단애가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시간이 많다면 가까이 가서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곧 해가 질 것이다. 시간을 지체하다간 내려가는 눈길에서 위험한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아쉽지만 하산을 시작하여 쉬지 않고 스텔라포인트와 길만스포인트를 지나 너덜지대로 들어설 즈음 다시 구토가 나왔다. 그렇지만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스틱으로 중심을 잡으며 스키를 타듯 신나게 미끄러지며 내려왔다. 급경사를 거의 다 내려올 때쯤 어둠이 짙어졌다. 키보 산장에 다다르니 저녁 7시 30분이 되었다. 고산증이고 뭐고 오로지 빨리 올라갔다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던 것 같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하산을 시작하여 호롬보에 도착하니 밤 10시 25분이 되었다.
▲20일 마랑구게이트까지 하산한 후 아루샤 호텔로 돌아왔다. 21일부터 25일까지 응고롱고로 국립공원과 세렝게티 국립공원 사파리를 하고 나이로비와 방콕을 거쳐 귀국했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다음번엔 남미 파타고니아에 가고 싶다. 나의 신조는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이다. 그렇다고 마냥 놀지는 않는다. 일할 땐 죽어라 일하고 놀 땐 신나게 논다. 올 11월에는 서초지역건축사회원들과 말레이시아 키나발루에 갈 계획이다. 용기 있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산을 좋아하는 동료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