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서토론회를 겸하는 ‘철학카페’라는 모임에서 건축과 음악에 관한 주제로 강의를 요청받은 적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두 예술을 구성하는 요소와 원리들이 어떤 유사성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주로 창원지역의 다양한 예술인들로 구성된 소규모 모임인데 그날은 평소에 비해 무척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고 귀띔해준다. 필자가 건축과 음악을 같이 전공했다는 것과 대체 건축이라는 예술이 음악과는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참석한 분들이 많았다.

강의가 끝난 후 질의응답시간에 어떤 여류시인이 묻는다. “듣고 보니. 건축은 음악과만 유사한 게 아니라 그 함축성은 시와도 아주 흡사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용예술이자 종합예술인 건축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한 질문이다. “예술적으로 잘 표현된 건축이라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인은 시의 운율을, 음악가는 멜로디나 리듬을, 화가는 색채나 구성을, 무용가는 율동적인 춤사위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건축은 모든 예술을 담고 있으며,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흔히 건축을 종합예술이라고 하지 않을까요?”

‘건축은 종합예술’이라는 명제는 바꾸어 말하면 종합예술일 수밖에 없는 건축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독창적인 동시에 복합적이며, 기술인 동시에 예술인 건축은 어떤 분야보다도 타 분야와의 연계가 강하게 요구되는 예술이다. 건축은 사실 대단한 응용력과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 여타의 순수예술들과는 달리 그 자체로 홀로 성립되지 않는다.

위대한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종합감각체험 없이는 건축이라는 교향곡이 탄생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말로 건축의 종합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건축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며 중요한 여러 예술의 종합이다. 건축은 형태이며, 색깔이며, 소리이며, 음악이다. 또한 공간이며, 폭이며, 깊이이며, 높이이며, 부피이며, 동선이다. 건축은 많은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수반되어야 하는 예술이다.”

르 꼬르뷔지에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화가이자 조각가, 문필가였으며 음악에도 무척 조예가 깊었다. 그는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추상적인 예술현상을 건축으로 시각화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며, 그들이 얼마나 훌륭한 건축의 재료이자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 건축가이기도 하다. ‘모든 예술의 통합’이라는 자신의 확고한 신조를 건축에서 실현시키고자 했던 그는 한마디로 종합예술인의 표본이며, 종합예술의 산물인 그의 건축은 그래서 또한 위대하다.

굳이 르 꼬르뷔제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르네상스의 많은 건축가들이 건축가인 동시에 화가. 음악가, 문학가, 철학가, 심지어는 수학자와 의사의 역할도 병행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의 기본적인 특성을 정확히 인지한 사람들로 많은 곳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들여와 건축에 접목시켰다.

그래서인지 실제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피렌체에 가보면 그 시대의 건축물들이 건축 이외의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전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하고 돌아온 필자의 한 지인도 “건축과 음악이 어떻게 비슷한지 몰라도 그 곳의 건축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절로 음악이 느껴집니다. 마치 아름다운 음악을 한 곡 감상한 것처럼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음악인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예술가였다면 또 다른 예술적 이미지들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건축이 종합예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건축가는 당연히 종합예술가여야 한다. 그렇다면 종합예술가로서의 건축가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건축 이외의 다른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다양한 경험을 가져야 하며, 그 이해의 폭이 다른 예술인에 비해 훨씬 넓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를 건축에 적극 수용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른 분야의 특수한 기법이나 원리를 건축디자인에 유입시키는 일은 작품의 수준을 향상시키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우리의 건축가들이 과연 종합예술가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든다. 비단 우리 건축계뿐만 아니라, 현 시대는 이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퇴행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소수의 건축가들에 의해 다른 예술분야와의 접촉이 시도되고 있긴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한 실정이며, 대체적으로는 타 예술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모든 예술을 아울러야 하는 건축가들이 왜 다른 예술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건축 이전에 오랫동안 음악을 공부한 입장이다 보니, 아무래도 건축을 음악과 연관시키기를 좋아한다. 사실 알고 보면 두 예술은 구성요소와 원리, 표현수법들이 무척 닮아있다. 음악의 멜로디를 들으며 건축의 선을 생각하고, 리듬을 들으며 역시 건축의 리듬을 떠올리고, 화성의 흐름과 건축공간의 흐름을 결부시킬 수 있는 건축가가 많다면 우리 도시의 표정은 훨씬 풍부하고 다채로워질 것이다. 말없이 서 있지만 마치 말하고 노래하며 춤추는듯한 건축물, 많은 예술들의 특성과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진정한 종합예술로서의 건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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