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이며 한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버혀 내어 /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 어론님 오신 날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는 긴긴 겨울밤을 외롭게 지내면서 임과 함께하면 언제나 짧은 밤을 반추하는데, 북학파 이덕무(李德懋)는 제야(除夜)를 맞아 스물다섯 나이에 더 먹기 싫다는 시를 쓰고 있다.
사람들은 나이가 쉰 살이라며 / 말끝마다 반백이라고 탄식하네 / 내 나이 이제 스물다섯이니 / 바로 쉰 살의 절반이 되었네./ 새해와 묵은해가 나뉠 즈음/ 대청의 등잔불꽃 어느덧 낮아졌네 / 나에게 길고 긴 새끼줄이 있다면 / 첫 새벽 우는 닭 묶어두고 싶네.
당(唐)시인 잠삼(岑參)은 섣달이 다가도록 소식 없는 친구를 그리며 오지 타향의 외로움을 시심에 담고 있다.
동으로 장안이 만리 길이라 하나 / 벗이여 어찌하여 편지 한장 없으신가 / 옥문관에서 서쪽을 바라보다 애간장 끊어지네 / 더욱이 내일이면 올해가 다가는 그믐인 것을.
고도의 압축과 상징으로 쓰여진 서정주의 동천(冬天)은 또 다른 섣달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김영랑의 제야(除夜)는 눈 감고도 그림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 동지섣달 나르는 무서운 새가 /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동천(冬天)>
제운 밤 촛불이 찌르르 녹아버린다 / 못 견디게 무거운 어느 별이 떨어지는가 / 어둑한 골목골목에 수심은 떳다 갈앉았다. / 제운 밤 이 한 밤이 모질기도 하온가 / / 희부얀 종이등불 수집은 걸음걸이 / 샘물 정히 떠 붓는 안쓰러운 마음 결 / 한해라 그리운 정을 묻고 쌓어 흰 그릇에 / 그대는 이 밤이라 맑으라 비사이다.<제야(除夜)>
각자의 처한 환경이 다름 같이 12월을 맞는 느낌과 소회와 각오도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건축사는 작품은커녕 호구지책도 어려운 한해가 가는 것 같다. 신석정의 소곡(小曲)으로 제야의 위안을 삼고 싶다.
오고 / 가고 / 가고 오는 / 세월의 비중도 무거운 분수령에서 / 물가듯 / 꽃가듯 / 가야할 우리도 아니기에 / 서럽지 않은 날을 기다리면서 / 다시 / 삼백예순날을 살아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