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가장 인기 있다는 드라마속의 대사가 나를 너무 슬프게 한다. “너는 연모를 둘로 나눌 수 있더냐?” 내가 선택한 일이라는 것이 미칠 정도의 연모가 없다면, 감당하기 힘든 직업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라는 정답도 없는 싸움을 늘 해야 하고, 때문에 언제나 마감 시간만이 존재하는 건축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 더욱이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의 요구를 읽어 내야하고 나아가 이를 이끌어야 나아가야하는 건축가라는 직업. 게다가 나는 한 아이의 엄마다. 아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그렇다면 우리가족과 건축에의 사랑을 둘로 나눌 수 없다? 사실 켕기는 것이 있어서 더욱 그 대사가 마음에 꽂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서 워커홀릭으로 통하는 나를 엄마로 둔 우리 아이에게 엄마는 언제나 바쁜 사람이어서, 웬만해서는 학교행사도 알려주지 않는다. 어차피 엄마는 안 갈 거니까.
언젠가 TV시사 프로그램에서 폐교 위기의 학교 부활 성공담을 보여준 적이 있다. “서울에서 이 지방학교로 옮겨와서 무엇이 좋아졌느냐”는 제작자의 질문에 한 어머니가 “저녁에 아이가 벗어놓은 바지에서 흙이 후두둑 떨어지면 오늘도 즐겁게 보냈구나..하며 행복해진다”고 환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때 아들 녀석이 나를 흘긋 보면서, “엄마는 내 바지 검사해 본적 있어?”한다. 대충 얼버무리기는 했지만 나를 적이 당황스럽게 했다.
현대 맞벌이 가정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일과 가정 사이에 조화’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이 가정에 소홀하다는 강박과 죄책감을 가지고 산다. 더하여 학자들은 일과 가정사이의 균형을 강조하며 맞벌이 부부들을 괴롭힌다(?). 그러나 학자들의 조언대로 과연 조화로운 삶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이런 고민에 해답을 주듯 내 입맛에 맞는 감언이설(?)을 해준 책이 있었다. ‘경영의 창조자들‘ 이 책은 조화로운 삶이란 헛소리라고 단언하고, 파도 타듯 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처한 장소와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면서. 즉, 매 순간의 조화보다는 인생이라는 큰 범주에서 조화를 중요시하라고 말한다. 마치 내가 세운 가설이 과학적 입증이라도 받은 마냥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모른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말처럼 인간인 이상 ‘부조화란 인간 조건의 일부다.’ 그래서 일과 삶 사이의 부조화는 당연한 것이며, 이 부조화에 대한 염려는 삶에서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게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건축가로서 창조의 에너지원이 되어 다시 나를 일하라 독려한다. 결과적으로 엄마로서, 교육자로서 역할들은 내게 감당해야할 짐이 아니라 건축에의 창조성을 주는 원동력이다.
샤르트르는 인생을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 한다.
나는 나의 매순간의 C가 B D사이의 조화를 이루어 줄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워커홀릭’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