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이웃과 함께해 같이 산다면 천만금이라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실천한 사람의 기록이 중국 남북조 시대의 남조 역사서인 <남사(南史)>에 나온다. 송계아(宋季雅)라는 고위 관리가 정년퇴직을 대비해 자신이 살 집을 보러 다녔다. 남들이 추천해 주는 몇 곳을 다녀도 송계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고는 천백만금을 주고 여승진(呂僧珍)이라는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했다. 백만금밖에 안 되는 집값을 천백만금이나 주고 샀다는 말에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물었다. 송계아의 대답은 간단했다. ‘백만매택(百萬買宅)이요,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 백만금은 집값으로 지불했고, 천만금은 당신과 이웃이 되기 위한 프리미엄으로 지불한 것이다.’ 송계아는 집을 고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좋은 이웃에게 둔 것이다.」
-박재희 교수의 강의 중에서-
「심리학에서 'Mr Happiness' 혹은 ‘King of Happiness'라고 불리는 행복전문가인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의 에드 디너(Ed Diener) 교수는 긍정심리학의 또 다른 대가인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 교수와 함께 <매우 행복한 사람 Very happy people>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 디너와 셀리그먼은 222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행복을 측정한 후에, 그 점수에 근거해서 가장 행복하다고 스스로 보고한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가장 행복하다고 답한 10%의 사람들과 나머지 사람들이 보인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돈, 건강, 운동, 종교였을까? 아니다. 가장 큰 기준은 바로 관계였다. 최고로 행복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혼자 있는 시간이 적었고,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최인철 저) 200쪽에서-
예로부터 좋은 이웃, 좋은 친구와 함께한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일로 여겼졌다. 공자도 이웃을 잘 선택해서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웃과 살지 않는다면 똑똑한 사람이 못 된다고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마을에 인(仁)을 가진 이웃들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里仁爲美). 잘 선택해 그런 사람과 이웃해 살지 않는다면(擇不處仁), 어찌 지혜로운 자라 하겠는가(焉得知).’ 좋은 이웃은 결코 돈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따뜻한 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공자의 주장이다.
이렇듯 옛 선현들도 그렇고 현대에 심리학을 전공한 행복전문가들도 좋은 이웃들과 함께 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그러나 최근의 우리 주거문화를 보면 편리성이나 고급화라는 측면에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지만 과거의 마을공동체와 집이 갖는 장점이 없어지고 아파트 일변도로 흐르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특히, 최근에는 아파트에 더해 주상복합이라는 이름으로 고층아파트들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분별하게 난립되고 있어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프랑스에서 한국 사회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젊은 연구자이자 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Valerie Gelezeau)는 서울을 처음 방문한 1993년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아파트단지에 놀라 이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아파트를 다룬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은 2003년 책으로 출간되었고, 그해 프랑스 지리학회가 수여하는 가르니에 상(Francis Garnier Prize)을 수상했다. 그 후 그녀는 아파트여사(Mrs. APT)로 불리게까지 되었고, 2007년에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책을 출판합니다. 그곳에는 우리에게 중요하고도 부끄러운 질문이 몇 가지 있다. “한국의 건축가들은 도시가 아파트로 획일화되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서구의 대단지 아파트 모델이 실패로 귀결된 반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모든 계층이 선호하는 이상적 주거형태가 될 수 있었을까? 한국의 아파트 모델은 대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주역에서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한다. 주거는 끊임없이 변화하여 왔고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온 이 시점이 주거문화에 있어 주요한 변곡점이 되었으면 한다. 주거환경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특히 미래의 주역이 될 우리 아이들에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들을 담을 수 있는 주거문화를 위해 건축가를 비롯한 건축하는 사람들의 선도적 역할이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