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지혜는 큰 지혜를 모르고, 작은 해(年)는 큰 해의 길이를 알지 못한다. 아침에 돋아 오른 버섯은 낮과 밤의 교체를 모르고, 매미는 봄과 가을의 교체를 알지 못한다. 버섯이나 매미는 살아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장자 “소요유”중에서-

어차피 사람이란 스스로의 부정을 통해 자기변신을 이뤄내기 어려운 속성을 가진 생명체인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가 보아온 세계에서, 걸어온 긴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고집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는 게 다인지도 모를 일이다. 위의 글은 작금의 혼돈된 세상살이에서 우리 건축인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조금은 허탈한 마음으로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다들 “어렵다. 힘들다.” 아우성인데 유독 저만 그렇지 않다고 딴전 피우는 사람은 없겠지만 살기 힘들다 해서 본업(本業)에 대한 본질과 목적을 잃어버린다거나, 정신과 생활패턴이 위축되어 행동반경을 축소지향으로만 몰고 간다면 더욱 혼란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바로잡고, 스스로 지켜 가야할 공동체 속에서 내 자신을 성찰해 볼일이다. 현재의 어려움이 특별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탓을 하기에는 섣부른 것이 우리 모두가 제 할 도리를 온전히 해왔느냐는 대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서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가장 기본(基本)적인 것부터”라고 단언하고 싶다. 현재의 혼돈 속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여러 문제들을 보고, 또한 그 문제들의 해법을 보고 늘 생각해 보게 되는 “기본(基本)” 이다. 왜곡되게 길들여진 우리의 시각으론 참으로 얻기 힘든 대답일는지도 모르지만 그 답은 말처럼 어쩌면 매우 단순 명쾌하지 않을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한 아무도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주지도 도와줄 수도 없을 것이다.

건축설계시장은 수요의 급감과 전망의 부재로 매우 심각한 상황을 맞은 지 오래다. 우리는 먹고 살아야 된다는 일념 하에 건축의 진정한 가치를 소홀히 하여 왔으며, 작금의 건축과 도시는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고 온갖 물신주의 악다구니로 말미암아 추악한 모습으로 변화되고 말았다. 와중에 덤핑설계비로 저질의 설계가 당연 시 되고 협회게시판 마저도 최저가용역비의 각종 공고가 버젓이 올려지고 다리가 섞어 들어가는 공룡의 모습으로 넋을 잃고 있다. 대부분 대학의 건축수업에서는 설계의 출발이 되는 규모와 스케일이 없고, 단지 이유모를 이미지만이 판을 치고 있다. 그렇다보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건축이 필요한지의 본질은 잃어버리고 껍데기만을 부여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또다시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자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려운 경기 탓으로 돌려버리기엔 잃는 것이 너무 많다. 감리는 설계의 연장이며 도면에서의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우리는 백년의 건축을 하면서도 너무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으로 다수결에 의존 해버린다. 감리업무 중 구조 와 기계분야 등의 검사업무는 분리 하더라도 감리의 순기능은 설계자 몫으로 남겨둬야만 한다. 또다시 가을이다. 내용은 없고 소리만 요란한 온갖 건축제들이 귀를 막고 싶도록 야단법석이다. 관객 없는 무대에서의 허탈함이 우리에겐 이제 너무도 익숙하다.

이제 우리는 다시 자신을 바로 세우는 자성의 시간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어야겠다. 진지하게 다시 교과서를 펴들고 대가들의 건축을 다시 읽고 새겨 우리가 진정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확인하고 도래할 미래를 위하여 반 건축환경적 요구의 건축주들에게 마지막 카드로 “노(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와 우리 일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야 하겠다.

경제적 상황은 매우 어렵고 복잡한 문제이며 우리(나)는 더욱 잘 모르는 분야이다. 생존경쟁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현재를 두고 필자의 작은 소망이 어쩌면 우스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특별한 마음가짐과 노력의 아픔 없이는 결코 진실된 건축으로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 우리 나름의 바람직한 10년 후를 위하여 우리 후세대들에게 물려줄 좋은 건축환경을 만들어야할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진 자로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진지하고 정확한 의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야 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가 태산을 움직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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