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은 아파트가 주거의 중심에 있고 무인경비 시스템이 보편화 되어 있지만 30년 전만 하여도 도시 주택의 담장 위에는 도둑을 막기 위해 깨진 유리병 조각을 꽂아 놓았었다. 그 시절 덕수궁 돌담길은 데이트 코스로 유명했지만, 대법원이 강남으로 이전하고 가정법원이 들어선 이후에는 기피 대상이 되었다 한다.
담하면 가장먼저 떠오르는 것이 돌담이다. ‘돌담길 돌아서면 또 한번 보고 /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보며 / 서울로 떠나간 사람.’ 나훈아의 노래처럼 시골태생들에겐 고향의 어릴 적 정겨움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김영랑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이 /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고 노래하는데, 하삼두는 돌담에서 자신을 반추한다. ‘돌담에 기대어 / 지나간 시간을 / 되돌아봅니다. / 사라진 것들과 / 남겨진 것들 / 그리고 간직한 것들...’
그런가 하면 김기홍은 돌담의 작은 돌 하나로, 사람을 하찮게 보는 이들을 질타한다. 발길에 걸리는 돌멩이라고 / 마음대로 차지 마라. / 그대는 담을 쌓아 보았는가 / 큰 돌 기운 곳 작은 돌이 / 둥근 것 모난 돌이 / 낮은 곳 두꺼운 돌이 / 받치고 틈 메워 / 균형 담는 세상 / 뒹구는 돌이라고 마음대로 굴리지 마라 / 돌담을 쌓다보면 알게 되리니 / 저마다 누군가에게 소중하지 않은 이 하나도 없음을.
돌담은 전국에 산재하지만 화산섬인 제주도가 제일 많다. 담장뿐 아니라 밭이나 과수원 등의 경계도 모두 돌담이다. 먹고 살기 위해 개간을 하다 보니 자연히 돌을 밖으로 내다 버려야 하는데, 이를 경계에 쌓아 마소의 출입도 막고 바람도 막는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는 이렇게 자연스레 만든 돌담 외에도 아름다운 담들이 많다.
경복궁 자경전은 담과 함께 만든 굴뚝의 십장생도가 보물로 지정되어있으며, 붉고 검은 조형전과 석회를 사용하여 만수(萬壽)의 문자문, 격자문, 육각문을 만들고 오얏꽃, 매화 천도(天桃) 모란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화려하게 장식한 꽃담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기왓장을 사용한 토담, 사고석을 이용한 석담, 통나무를 섞어 쌓은 담의 조형미가 뛰어나다.
그런데 요즈음 다세대 다가구 주택의 범람으로 주차장이 모자라자 담을 헐고 주차장을 확보하는 ‘담 없는 거리’ 조성이 대세를 이루고 이에 따라 각급학교와 관공서도 소통을 위해 담을 헐고 개방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담 없는 초등학교에서 어린이 성폭력사건이 횡행하고 있어 다시 담을 쌓고 있다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묘안을 창출해 낼 때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돌담이건 흙담이건 소박한 고향의 정겨움이 우선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