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문제를 촉발시킨 모 방송국의 TV 프로그램은 초등생까지 나서서 촛불집회로 전국의 밤을 지새웠으며, 정권퇴진운동으로까지 전개 되었다. 이 문제는 허위보도로 법정에 서게 되었으나, 담당 PD 등은 언론의 자유를 외치고 언론노조 등은 이를 지지하는 데모를 벌였다. 최근 이 프로의 영어를 번역한 작가는 그들의 거짓을 폭로하는 책을 출간함으로써 진위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추석을 앞 둔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매출은 호주산 쇠고기의 60% 기격에도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거짓임에도 뇌리 속의 기억은 이성을 앞서기 때문인 듯하다.
20세기는 신문에서 TV까지 매스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이뤄진 세기로써 ‘대중의 등장’과 ‘세계는 하나’라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러한 매스 미디어의 위력을 처음 간파하고 이용한 사람은 레닌으로서 망명지 스위스에서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라는 논문을 통해 ‘신문은 비단 집단적 선전자, 집단적 선동자일 뿐 아니라 집단적 조직자’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했고 이후 공산국들의 언론관은 신문뿐 아니라 TV 영화 라디오 등 모든 매스 미디어를 전제주의적 언론통제의 패러다임으로 발전시켰다.
나치즘의 히틀러는 병졸 출신이었지만 신문은 물론 라디오까지 이용하여, ‘민족지상’ ‘국가지상’을 열렬히 외치면서 국민을 집단최면 시키는 정치선전으로 나치당 의석을 4년 만에 20배나 늘려 합법적으로 정권을 창출하였다.
매스 미디어의 발전은 위와 같이 이를 이용하고 장악하여 통치수단으로 삼는 부정적 사례가 있기는 하였지만 민주사회에서 이들은 취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부정과 불의를 폭로하고 권부를 감시하는 책임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막강한 미국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였으며,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기자를 싫어하고 언론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부정확한 보도로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고, 의도적으로 왜곡기사를 쓰는 언론인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의 유일한 건축사신문은 10년의 역사 속에 많은 업적을 쌓아왔지만 최근 통합관련 기사에서 ‘결사반대’ 등 과장된 단어를 남용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들은 이렇게 어려운 결단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일수록 보다 많은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하고 중립적인 입장 견지와 상호의견의 존증을 일깨워야한다. 이것이 매스 미디어의 진정한 자유와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