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 4월 26일 맥린에 의해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항에서 아이디얼X호 선적으로 시작된 컨테이너 운송은 1톤에 5.83달러였던 중간크기 비포장 선적비용을 15.8센트로 줄이게 되었고 오늘날 해상운송의 90%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다음해 컨테이너 운송의 대명사가 된 시 랜드(Sea Land)를 창업하였다.
컨테이너 출현 전의 항구는 자재창고가 즐비하였고 물류비용을 아끼기 위한 공장들이 밀집하였으며, 화물의 적재와 하역을 위하여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두에서 일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컨테이너로 인하여 물류비용이 절감되자 공장들은 땅 값 비싼 항구를 벗어나 공장을 세우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공산품 값은 더욱 내려가게 되었다. 컨테이너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환률 구조의 변화, 반복되는 석유파동, 식민지제도의 종식, 제트기의 발명, 컴퓨터 보급의 확장, 장거리 고속도로 건설 이 외에도 수많은 발명과 개혁들이 거듭되는 세계경제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으며, 세계화만 이뤄놓은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기반도 만들어 놓았다. 이상은 컨테이너를 해부한 마크 레빈슨의 박스(The Box)란 책의 내용이다.
월남전과 더불어 군수물자의 신속 정확한 운송은 컨테이너 수송을 가속화 시켰으며, 한국은 컨테이너 제작 수출국으로서 명성을 쌓아, 한 때 수출 효자 종목이 되기도 하였다. 저자는 ‘조선 산업을 국가과제로 추진하던 한국이 1973년 석유파동으로 유조선 시장이 움츠러들었을 때 컨테이너선의 수요폭증은 전화위복이 되었으며, 보잘 것 없던 부산항 또한 1974년 컨테이너부두가 생긴 뒤 1995년 세계 5대 컨테이너항구로 당당히 올라설 수 있었다며 한국만큼 컨테이너의 덕을 본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오늘 날 컨테이너는 화물의 운송 외에 물품 보관과 가설건물 그리고 세컨드 하우스로도 쓰여 지고 있다. 단기간 이삿짐센터의 물품보관이나 공사 현장 가설사무실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요즈음은 스크린 골프까지 컨테이너 박스에 담겨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11년 전 법규위반 콘테이너 건물인 화성 시 랜드의 화재사건으로 20여명의 어린생명을 잃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금번 대한건축사협회는 건축사 대상 컨테이너 하우스 작품공모를 하고 있다. 입상작들은 도시와 사람들에 의해 현실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사지가 많은 한국의 산악지형에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며 건축비용도 적게 드는 컨테이너 하우스가 건립된다면 일거양득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