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서
- 강지혜
누군가는 주인공으로 태어난다
주인공은 조력자를 만난다 주인공은 사건을 만난다 사건은 주인공의 비상한 머리와 소름 끼치도록 치밀한 우연으로 해결된다 열렸거나 닫혔거나 결말이 나고 주인공은 웃거나 울거나 죽는다 구조는 구조적이라 간단하다
주인공이 아닌 인물은 기도하지 않는다
당신은 하나의 인물이다
인물은 어떤 배경에 불과하다 주인공을 둘러싼 무늬나 색깔, 규칙 따위의
그러나 신은 비밀을 숨기는 것을 어려워한다
주인공이 웃거나 울거나 죽을 때 인물은 그저 살아가고
그 어떤 결말도
결코
인물을 이길 수 없다
-『내가 훔친 기적』강지혜 시집
민음사 / 2017
시가 자유롭다는 것은 이와 같을 때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라도 시는 가볍게 만드는데 탁월한 형식이다. 이야기를 비틀고, 신을 곤란하게 만들고, 배경을 부각시킨다. 우리를 지배하는 고정관념을 반전시킨다. 마치 양화를 음화로 만들듯 모든 것들이 거꾸로 재배열된다. 거기서 우리는 평범한 것들의 승리를 경험한다. 이 시는 마치 벽돌로 쌓은 아치를 보는 것 같다. 벽돌 하나를 빼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가장 중요한 벽돌을 우리는 ‘키스톤’이라고 부른다. 이 시에서 키스톤은 “당신은 하나의 인물이다”는 구절이다. 그것이 없으면 무너지는 아치와 같이 아름답게 서 있는 시다.
함성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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