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러 명의 건축사들이 구청장, 시장, 지방의회 의원 등으로 당선되었다. 건축사가 구청장 등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이번 선거에서와 같이 많은 건축사들이 선거에서 당선된 일은 이례적이다. 요즘과 같이 사기가 떨어진 건축사들에게 아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이번에 당선된 사람 가운데는 오래전에 같이 공부하였던 친구 건축사가 구청장에 당선되었다. 그것도 정치 일번지라는 종로구청장으로 당당히 당선되어 친구로서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모른다. 대학원에서 같이 건축을 공부하였던 친구는 언젠가부터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행정학박사학위까지 취득하더니 구청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건축사를 하던 친구가 처음 구청장선거에 나서겠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 하였다. 평소 건축 속에서만 살아가던 건축사가 정치라는 것을 하겠다고? 그러던 친구는 그 동안 두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기 좋게 당선의 영광을 안아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건축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친구는 그 동안 선거에 나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지역구 행사, 정당 활동 등 평소 우리들 건축사가 하던 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고 목표 또한 여느 건축사들과는 달랐다.

이런 일은 우리에게 ‘건축사로 살아가기’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그 동안 건축사들도 업역(業域)을 넓혀야 하고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의 쾌거는 건축사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었고, 건축사들에게도 새로운 길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일을 계기로 건축사들도 혁신적인 발상과 아이디어로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 해 볼만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모든 건축사들이 건축을 당장 때려치우고 모두다 구청장선거 등에 나서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 건축사를 둘러싼 환경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고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더 가속화 할 것은 뻔하다. 그러므로 오직 설계나 디자인 등에만 매달리지 말고 뭔가 다른 일(?)도 해보자는 것이다.

건축사들은 다른 전문직에 비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건축사는 의사 등의 전문직에 비하여 시간도 많고, 자신이 직접 온 종일 치료 등의 일에 매달려 있지 않아도 된다. 또 건축사는 건축과 관계되어 할 수 있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시공, 인테리어, 개발사업, 자재 관련 사업...등에 정치나 행정까지 일일이 열거하기 번거로울 정도로 많다. 그러므로 설계나 디자인이 아니면 곧 굶어 죽을 것처럼 염려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러한 일들은 건축사이기에, 설계를 하기에 더 유리하고 접근하기에도 좋은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가 창창하고 유망한 젊은 건축사들마저 사기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다.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만 정당 활동을 하고 유세를 다니며 지역구활동까지 하는 건축사들도 있는데 할 일이 없다고 한숨짓고 앉아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에 건축사들도 우리들이 평소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 건축사 구청장, 건축사 시장, 건축사 의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제는 건축사가 설계와 건축을 하지만 정치도 하고 행정 분야에도 나가고 경영자도 되어보자. 얼마 전 어느 경제세미나에서 유명한 벤처기업가가 한 강연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약사 출신의 이 강연자는 다른 약사들이 “약국을 합니다”라고 할 때 비록 초라한 구멍가게 약국으로 시작하였지만 “약국을 경영한다”라는 자세로 온갖 노력을 하여 지금은 유명한 벤처회사의 CEO까지 되었다.

다른 약사들이 나는 장사치가 아니라 약사라고 으스대고 앉아만 있을 때 자신은 앉아서 약만 파는 약사가 아니라 경영을 하는 약사가 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설계, 디자인, 작품 등만을 논하려 하는 건축사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물론 건축사는 설계나 디자인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된 세상에 건축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설계를 발판으로 업역을 넓혀 건축사에 대한 위상도 높이고,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하여 뭔가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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