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긍정의 힘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우리사회 본연의 가치와 질서를
지켜내고 있다


비와 눈이 수시로 내려 음습한 기운마저 들게 했던 겨울이 지나고 결국 봄이 왔다. 봄의 느낌은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할 수 있는데 오늘은 ‘겨울잠에서 깨어남’, ‘희망’ 두 단어를 골라 본다.
특별히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던 중학생 시절, 가끔 단체로 관람하는 영화는 큰 기쁨이었다. 쉬는 시간 교실 스피커를 통해 영화 관람을 알리는 ‘ㅇ’선생님의 목소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음이었다. “전교생에게 알린다. 금일 충주극장에서~”라는 대목에서 교실은 함성으로 뒤집어지곤 했다.
요즘은 영화 보기가 쉬워졌지만 감동을 주는 영화가 드물어 영화관을 자주 찾지는 않는다. 감동을 주었던 영화 중에 「쇼생크 탈출」이 있다. 20여 년 전 첫 상영된 이래 TV에서 자주 만나는 영화인데 최근에 또 보았다. 자유를 갈구하여 탈옥에 성공하는 젊은 ‘앤디’와 교도소생활에 적응이 된 노인 ‘레드’를 중심으로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불꽃처럼 강렬하게 배치되어 진한 감동을 준다. 특히 ‘레드’역을 맡은 모건프리먼의 담담하면서도 안정적인 연기는 이 영화를 명화의 반열에 올리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레드는 가석방심사에서 ‘교화되었다’고 당당히 말 하지만 번번이 심사에서 탈락한다. 하지만 50년 간 감옥생활에 익숙해진 ‘브룩스’는 가석방이 결정되자 오히려 불안증세를 보이며 난동을 부린다. 동료들은 그가 미쳤다고 했지만 레드는 냉정히 말한다.

 “브룩스는 미친것이 아니야. 교도소에 길들여진 것뿐이야. 처음에는 거부하려하지만 곧 익숙해져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 없게 되지. 그게 길들여지는 거야.”

레드에 앞서 가석방으로 출소한 브룩스는 사회에 적응을 못 하고 결국 자살한다. 레드도  마침내 가석방되어 자유를 찾아 극적으로 앤디를 만난다. 브룩스와 차이라면 그에게는 일찍이 앤디로부터 받은 자유와 꿈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가 있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지금까지 180여개 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는 스무 살에 처음 읽은 이후 읽을 때마다 감동의 깊이를 더해 준다. 어린왕자는 여러 부류의 사람, 동물, 식물을 만나며 숱한 명대사를 남기는데 사막의 여우로부터 ‘길들인다’는 말에 대해 듣게 된다.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하게 돼. 나에게는 네가 세상에 하나 뿐인 존재가 되는 거고, 너에게는 내가 세상에 하나 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여우는 길들인다는 것을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했다. 길들인다는 표현이 좀 어색하긴 하지만 딱히 다른 우리말도 없는 것 같다. 결국 길들인다는 것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리하여 오롯이 그에게로 동화(同化)되는 그런 경지가 아닌가 한다.
봄은 기쁨이요, 희망.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긍정의 힘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우리사회 본연의 가치와 질서를 지켜내고 있다. 익숙한 것으로 부터의 결별은 우리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존재임을 명징(明澄)하게 일깨워 준다. 지금 부안 어느 산자락, 아기 손가락을 펼친 듯 하얀 ‘변산바람꽃’ 수줍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겠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