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산책길에서 봄나물을 파는 시골 아낙네를 만났다. 그녀의 좌판은 초여름의 향내가 물씬 나는 여러 가지 나물들이 수북했지만 역시 싱아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 6.25 전쟁 때 떠나 온 고향 개성을 생각 할 때면, 어려서 먹던 싱아의 상큼한 맛과 더불어, 무선지 뚝배기를 떠올리곤 한다.
어느 지방에서나 선지국 또는 해장국의 이름으로 선지덩어리를 사용하는 곰탕류의 음식이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고향에서 먹어 본 무선지나 선지구이는 못 먹어 보았다.
개성지방에서는 소를 잡고 난 뒤 피를 받아 끓는 물에 넣고 응고시킨 것을 ‘피선지’라고 부르는데, 양지머리나 내장 등과 함께 선지곰국을 끓이거나 배추 잎 등의 채소를 넣고 담백한 선지국을 끓여 해장국 대신 쓴다. 또 무선지라고 해서 통에 담긴 피를 그대로 가라앉혀 맑은 윗부분을 떠내어 약간의 양념을 넣어서 달걀찜을 만드는 것처럼 뚝배기에 담아 찐 것이 바로 무선지인데 이 맛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있다. 손바닥만 하게 넓적하게 만든 피선지는 종이가 귀했던 시절이라, 넙적한 갈잎에 싸줬다. 피선지를 석쇠에 구워 양념장을 찍어 먹으면 제법 맛이 구수했다.
어머님이 생존해 계실 때만 해도 어머님을 졸라 가끔 무선지 뚝배기 맛을 보았는데, 지금은 정육점에 부탁해서 소피를 구하는 일도 힘들고, 나 외에는 집안에서 별로 대단찮게 여기므로 그 맛을 못 본 지가 오래 되었다.
무선지 뿐이랴. 순대와 편수(개성만두), 약과, 다식, 강정 등이 모두 추억속의 음식이 돼버리고 말았지만, 탕평채와 편수 흉내를 낼 줄 아는 딸아이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고향의 장거리마다 싱아가 지천으로 있었다. 아욱보다 조금 크고 굵은 줄기를 뚝뚝 꺾어 껍질을 벗겨먹는 싱아와 함께 무선지는 개성지방의 토속식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도 장거리에서 피선지를 싸서 주던 포장용 갈잎이 소쿠리에 수북하게 담겨 있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피선지 무더기와 올망졸망한 크기의 뚝배기에 담겨 있던 먹음직스런 무선지를 생각하면 잊고 있었던 고향의 맛이 입속에 가득 찬다.
※ 싱아(숭애): 개성(개풍)출신 작가 박완서의「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싱아는 다년생 초본 식물로 속설로는 옛날 왕의 도읍지였던 지방에서만 자란 다고 하는데, 작년 초여름 신촌 현대백화점 근처에서 사먹은 싱아는 강화도산이라고 했다.
싱아의 과는 마디풀과이며, 속은 싱아속이고 학명은 ‘Pleuropteropyrum polymorphum Nakai’불린다.
우리나라 각처의 산이나 들에 나는 다년초로 다자라면 1m정도이고, 줄기는 굵고, 곧게 서며, 잎은 호생, 잎자루는 짧다. 난상타원형의 특징을 가진다. 6월에서 8월 사이에 꽃을 피우며, 어린잎이나 줄기는 식용으로 사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