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성금으로 1986년 광복절에 개관하려던 독립기념관이 불과 11일을 남겨두고 최종점검을 위한 전등점화 순간, 부실시공으로 인한 과부하로 화재가 발생한 것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이었다. 실상은 정부의 1년을 앞당긴 무리한 공정이 빚은 결과였지만 결론은 감리부실로 인한 부실시공으로 귀결되었고, 이는 다음해 별도의 전문기술업무로서 감리가 설계와 분리, 강조되는 건설기술관리법의 제정을 가져오게 되었다.

1962년 건축법이 제정되기 전의 감리는 설계업무의 일부로 간주되었으나, 이후 법은 일정규모 이상은 공사감리를 의무화하고 일정자격을 갖추고 등록한 건축사가 시공의 적법성과 설계도서대로 시공여부를 확인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감리에 대한 건축주의 인식은 건축법 제정 이전과 변함이 없어, 정당한 대가의 지불은 고사하고 그저 설계의 후속 서비스로 생각하고 감리 안 해도 좋으니 준공서류에 도장이나 찍어달라는 식이었고, 건축사들 중 일부는 과열경쟁으로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게 되어 부실건축이 사회의 이슈가 되고는 하였다.

1994년, 정부는 감리원에게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부여하는 ‘책임감리제도’를 건설기술관리법에 도입하고, 민간부분이 건설하는 주택건설공사에도 책임감리 성격이 부여된 ‘주택건설공사감리제도’를 도입한다.

1995년 501명의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내셔널 지오그래피가 분석한 것처럼 부패사회 속에서 돈에 눈이 먼 건축주와 안전 불감증이 합작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단공법과 제대로 된 시공 때문에 5년이나 붕괴가 지연된 사건이었다. 상가가 백화점으로, 설계에 없는 증축과 수영장 설치, 중간기둥의 제거와 붕괴위험의 진단을 받고도 영업을 계속한 행위 등등. 결국 이는 1997년 건설산업기본법의 입법과정을 통하여 특수 대규모 복합공사에 적용되는 ‘건설사업관리제도(CM)'가 탄생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지난 8월 3일 국회에는 윤영의원이 대표 발의한 ‘설계 감리분리’입법안이 발의되어 건축계가 술렁이고 있다. 건축사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설계의 연속선상에서 설계자가 감리를 해야 한다는 원칙론과, 그에 동의하지만 건축주와의 관계 등으로 온전치 못한 감리가 될 수 있음으로 분리하되, 감리비를 건기법처럼 일괄적으로 납부한 후, 설계감리와 공사감리로 나누어 배분하자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분명한 것은 주촉법, 건기법으로 찢겨지고 남은 감리분야는 반드시 건축사만이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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