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하

할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아버지가 부려먹었다
첫째 아들이 부려먹었다
둘째 아들이 부려먹었다
첫째 며느리가 부려먹었다
둘째 며느리가 부려먹었다
첫째 손자가 부려먹었다
둘째 손녀가 부려먹었다

밥 번다는 이유로
평생 싼값에 부려먹었다

회초리같이 가느다란 사람,
암에 걸려 수술대 위에 걸려 있다
-『길이 우리를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
박용하 박용재 형제시집 중에서 /문학세계사 / 2016

여기 이 시에 무슨 말을 더 보태겠는가? 보태봐야 반복이고, 빼봐야 더 간단해지지도 않는다. 염낭거미는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주머니를 만들고 거기서 새끼를 낳는다. 갓 태어난 새끼는 그 주머니 안에서 안전하게 성장한다. 어미를 뜯어 먹으면서.
그리고 주머니를 찢을 만하게 성장했을 때 밖으로 나온다. 그 땐 아마 어미의 몸은 형체도 없이 다 먹고 난 후일 것이다. 모든 새끼들의 몸은 모든 어미의 무덤이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