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디자인법 하위법령’ 제정안 공청회
표준조례에 ‘건축·도시·토목·경관’ 슬그머니 포함
“공공디자인법이 건축법·토목관련법 보다 상위법?”


“법이 아닌 조례에서 건축물을 적용범위에 포함시키면 건축법, 토목 관련법 등의 타 법안보다 상위법이 되는데 말이 안 된다.” (한국건축정책학회 김의중 부회장)
“현재 조경은 국토교통부의 건축법과 조경기준, 산자부의 환경디자인과도 연계돼 규정되고 있는데 공공디자인법의 조례안을 통해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타 분야와 협의·조정이 필수적이다. 공공디자인전문회사 신고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업계 번거로움만 키운다.” (환경조경발전재단 정주현 이사장)
“안정적으로 운영돼오던 분야에 대하여 상위법 제정과 별도로 타분야와 협의하지 않은 가운데 조례로 시설물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김정수 교수)
6월 2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개최한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공공디자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안) 공청회에서 토론자들이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안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가장 큰 쟁점은 문체부가 마련한 표준조례(안)에서 공공디자인위원회 심의대상 공공시설물에 ‘공공공간, 공공건축물, 도시기반시설물, 가로시설물, 공공매체’를 포함해 적용대상을 대폭 확대한 점이다. 모두 공공디자인법 적용범위에서 제외된 분야들이다. 표준조례안은 기존 지자체에서 시행돼온 공공디자인 조례 중 적용대상이 가장 폭넓은 경기도 조례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공공디자인법 제2조 제3호에 따르면 ‘공공시설물 등이란 일반 공중을 위하여 국가 기관 등이 조성, 제작, 설치, 운영 또는 관리하는 시설물과 용품, 시각이미지 등으로 ①대중교통 정류소·자전거 보관대 등 대중교통시설물, ②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펜스 등 보행안전시설물, ③벤치·가로 판매대·파고라 등 편의시설물, ④맨홀·소화전·신호등 제어함 등 공급시설물, ⑤가로수 보호대·가로화분대·분수대 등 녹지시설물, ⑥안내표지판·현수막게시대·지정벽보판 등 안내시설물, ⑦그밖에 <①에서 ⑥까지의 시설물>에 준하는 시설물 등’ 포지티브 방식으로 규정됐다.
관련 업계는 일제히 “건축, 토목, 조경, 도시 등의 타 법안보다 상위법으로서 공공디자인 법령이 적용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표준조례안은 사전에 배포된 자료에는 없었지만 현장 공청회 자료로 토론자·참석자들에게 별도 배부됐다. 토론자로 나선 관련업계 인사들은 버스·택시 승차장, 지하철 출입구, 환기구, 방재시설 등을 심미적으로 좋게 만든다는 입법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 위계의 문제와 타법과 충돌하는 위험성을 걱정했다.
김의중 한국건축정책학회 부회장은 토론에서 “오늘 현장에서 받아 본 표준조례안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공공시설물이라 해서 공공공간, 공공건축물 등 모든 건축물·구조물·시설물이 망라돼 있다”며 “교량, 터널과 함께 공공건축물에는 공공청사, 박물관, 미술관, 의료시설 등 모든 건축물이 전부 들어가 있다. 공청회 참석 전까지 적용대상이 가로시설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배포된 자료로만 본다면 건축법, 토목관련법 보다 공공디자인법이 상위법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조례는 단체장이 바뀌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내용으로 타법과 겹칠 우려가 있는 적용범위를 조례로 정한다는 것은 위험이 크다”며 “관계부처, 단체와 협의를 통해 정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신은향 문체부 시각예술디자인과 과장은 “공공디자인 조례는 공공디자인 진흥법과 별개로 공포 이전부터 각 지자체에서 시행한 것으로 법안의 틀에 맞출 필요는 없다 판단된다”며 “실제로 기존 판례에서도 조례가 법령에 소속되는 것이 아닌 것으로 판결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 부회장은 “사업 분야별 안전기준 준수 확인 방안을 어떻게 담을지, 안전기준의 준수여부는 어떻게 확인할지도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시특법(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과 국계법(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시설물이란 용어를 현재 사용하고 있어 용어정의 충돌도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공공디자인전문회사 및 용역참여 기준을 인원·매출액으로 하는 것은 디자인의 성격과 맞지 않아 자격기준 및 경력으로 유연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해당 법안으로 관련 회사 및 기관의 전문성 검증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돼 분야별 전담기관을 설립해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법안에는 다양한 분야의 업역을 포함하고 있어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사전 협의가 필수적이다. 법안 용어 정의가 제대로 안된 상태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하위법안 제정 이후에도 검토과정을 거쳐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주현 환경조경발전재단 이사장은 “토목, 건축, 조경 등을 공공디자인에서 상위법으로 관리하려 하는 것은 이중적 규제”라며 “이것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판단돼 법령의 제정 의미와 맞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실제로 디자인 전문인력이 제작과 시공, 유지관리의 영역까지 다 커버할 수 있느냐. 공공디자인 위원회의 구성과 심의에서 중앙기관의 장·차관 급 위원으로 구성, 분과위원회가 설치되는데 여러 부처 중앙 고위직들의 심의기능이 실제적으로 가능한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황승흠 국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위원회가 겹치는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통합 위원회 운영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판단된다”고 답변했다.
이날 공청회에선 공공디자인법이 입법절차를 거치며 적용범위가 축소돼 조례로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채민규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이미 안정화된 분야를 새로운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입법절차를 통과하며 적용범위가 너무 축소됐다. 조례로 확대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판단된다”며 “다만,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허술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 지속적인 보완,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공공디자인법 시행령·시행규칙’은 7월 중 규제·법제심사, 국무회의를 거쳐 올 8월 4일부터 시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