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업계, 내진용품 국내 인증기준 부재
제도기반 없는 ‘소방 설계·시공·감리업계’에 직격탄
“내진설계 시행 유보해야 한다” 주장도

내년부터 2층 이상 신축건축물에 내진설계가 의무화되고, 올 5월 31일 개정·시행된 ‘건축구조기준’에 따른 비구조요소 내진설계 기준 신설로 건축사업계가 긴장속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 내지 파급력에 예의주시 하고 있다.
정부는 5월 27일 ‘제9차 국민안전 민관합동회의’에서 올 4월부터 운영된 ‘지진방재 대책TF’에서 마련한 ‘지진방재개선대책’을 확정하고, 내년부터 신축건축물 내진설계 대상을 현행 3층 이상(또는 연면적 500㎡ 이상)에서 2층 이상(또는 연면적 500㎡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또 5월 31일에는 ‘건축구조기준’이 7년 만에 개정돼 배기구·칸막이 벽체·유리·굴뚝·천장·광고판 등 건축물의 비구조요소에도 내진설계 기준이 신설됐다. 하지만 올 1월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소방시설 내진설계에 따른 소방시설 설계, 시공, 감리 등 업계 대혼란이 앞으로 곧 닥칠 ‘건축사업계 혼란’ 신호탄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 내진설계에 시름하는 소방업계

현재 소방시설 중 옥내소화전, 스프링클러설비, 물분무등소화설비에 내진설계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올 1월 15일 시행에 돌입한 ‘소방시설의 내진설계 화재안전기준’ 개정에 따른 것인데, 앞으로 신축되는 특정 건축물 옥내소화전·스프링클러설비·물분무등 소방시설에는 내진설계를 반영해야 한다. 소방시설에 내진성능을 확보해야 하는 건축물은 ▶3층 이상, 높이 13m 이상, 처마높이 9m 이상, 기둥사이 거리 10m 이상 건축물 ▶연면적 500㎡ 이상 건물(다만, 창고·축사·작물 재배사 등 제외) ▶국가적 문화유산 등이다. 쉽게 말해 건축법상 구조확인을 받아야 하는 건축물 중에서 옥내소화전, 스프링클러설비, 물분무등소화설비가 설치되는 경우는 소방시설 내진설계를 적용받는다. 다만 내년 1월 24일까지(1년) 소방관서의 건축허가 동의 시 내진설계기준에 맞춘 설계도서를 제출하지 못할 경우 소방시설착공신고 때 내진설계 도면을 추가로 제출해야 한다.
소방업계에 따르면 소방시설 내진설계제도를 두고 일선 소방관서와 소방업계가 혼란에 시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국내에 내진제품에 대한 인증체계가 없어서다. 특히 소방시설 내진설계는 그나마 안정화돼 있지만, 내진설계공법에 따라 시공을 책임지는 현장과 감리자 입장에서는 어떤 제품을 현장에 적용해야 하는지, 어떻게 성능검증을 받아야 할지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이 작동할 제도적 기반이 안돼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내진설계 시행을 유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5월 28일 국민안전처와 한국소방기술사회가 주관해 개최한 ‘소방시설 내진설계 기준 적용방안 세미나’에서는 수백 명의 참석자가 제도시행의 문제를 놓고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 건축물 설계 시 제약조건으로 작용, 

사업성 ‘뚝’, 소방설비 자재업자 독점 우려

사정은 건축사업계도 마찬가지다. 소방시설 내진설계 기준은 건축물 설계자 입장에서 볼 때 설계 시 큰 제약조건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바뀐 제도에 따르면 소방배관 등에 지진분리장치, 지진 흔들림 방지 버팀대(4방향, 종방향, 횡방향)를 일정 간격으로 설치해 소방시설 내진을 위한 설비가 의무화됐다. 옥내소화전의 경우, 근린생활시설은 연면적 1,500㎡ 이상이거나 지하층·무창층 또는 층수가 4층 이상인 층 중 바닥면적이 300㎡ 이상인 층이 있는 경우 모든 층에 설치된다.
소방시설 내진설계 기준에 따라 종방향 버팀대의 경우는 160mm 이상의 최소 높이를 확보하도록 하고 있어 건축물의 천장면과 상층부 구조체 사이에 설비를 위해 필요한 공간이 대폭 증가하게 된다. 때문에 생활하는 공간의 개방감은 낮아지고 이는 설계자의 제약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아파트는 벽식일 때 내진조건을 맞추려면 지금보다 공간이 넓어질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천장과 반자사이의 거리가 160mm 이내로 가까운 경우에는 스프링클러설비의 내진보강을 위한 고정장치 등을 설치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경우 설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해설서 및 업무지침으로 시달해 현장에서 관련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건축주의 사업성도 떨어진다. 천장면과 상층부 구조체 사이의 설비 공간은 건축물의 용적률과 직결되는 건축물의 층수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내진설계기준 적용 시 2개층 이상의 입주자를 잃어버리게 된다. 예컨대, 기존에는 건축물의 높이가 10층이 가능했다면, 기준 적용 후에는 건축물의 높이는 10층 이하로 사업성이 대폭 낮아진다.
특히 ‘소방시설의 내진설계기준 제정안’ 규제심사안에 따르면, 소방시설에 대한 내진설계는 신축 소방대상물로서 옥내소화전설비와 스프링클러설비를 설치하는 대상의 규모로 가정해 비용이 산출됐다. 전체공사비는 4.7%정도 증가, 연간 신규건축물 8,406개소에 대한 총 규제부담 비용이 245억원정도 추정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근생은 연면적 1,500㎡ 이상, 지하층·무창층 또는 층수가 4층 이상인 층 중 바닥면적이 300㎡ 이상인 층이 있는 경우 옥내소화전은 모든 층에 설치되고, 용도변경으로 근생이 될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해당범위는 국민안전처 예상보다 더 커진다는 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아울러 소방 관련 내진설비 자재업자의 독점도 우려된다. 현재 내진관련 소방시설 인증 국내 기준이 별도 마련돼 있지 않은 관계로 정부는 해외에서 UL, FM 인증이 있는 제품을 사용 시 소방시설을 내진설계한 것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건축사협회 정책연구실은 “미국에서 UL(Underwriter's Laboratories, Inc), FM(Factory Mutual) 인증이 있는 내진소방시설 제조업체의 제품을 들여오는 국내 업체는 3개사 뿐이다”며 “판매단가를 고가로 담합해 내진 관련 소방시설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민원도 있어 공정거래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 내진제품 경우도 인정할 수 있는 범위, 관련조항을 만들어 중앙소방기술심의위원회를 열어 확정한 후 각 소방관서에 안내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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