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일이 버겁고 마음이 심란할 때 나는 산을 찾는다. 물론 그냥 가고 싶어서 갈 때가 더 많다. 산은 이제 나에게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서울의 불암산 자락에서 20년 넘게 살다보니 아침에 눈 뜨면 산으로 가고 주말이면 전국에 산을 두루 찾는다.
혹자는(아내 포함) 산에 가면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산을 다니느냐고 한다. 대답은 “그냥, 좋아서”이다. 그렇지만 분명 얻는 게 있다. 아니, 너무 많다. 건강(몸과 정신 모두)만큼은 확실히 챙길 수 있다. 20대의 몸무게가 아직껏 유지되고 일주일에 3∼4회의 각종모임과 술자리도 등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사람이 건강해야 일도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것 아닌가.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나를 키운 건 8할이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아침 산책길에 떠오른 것을 옮겨 적는 것이다. 내가 지금껏 써온 글, 좋은 생각, 건축적 아이디어 등은 사무실 책상이 아닌 산행 길에서 대부분 얻을 수 있었다.
예전엔 산에 가면 정상까지 올라야 성에 찼고 남보다 빨리 올라야 만족스러웠다. 지금은 그저 여유롭게 즐기는 편이다. 일 또한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했고 한 때는 세계적인 인물이 되겠다는 꿈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건축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자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매일 마다 남 좋은 일 하나씩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돈 많이 버는 게 장땡인 사회에서 무소유의 가르침을 남기고 떠나신 법정스님의 숭고한 뜻을 실행하기는 어렵지만 난 그저 70%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업 잘 되십니까?”라는 물음에 일단은 “예”라고 한 뒤에 “그렇지만 돈은 못 번다.”라고 대답한다. 바쁘게 움직이기는 하는데 손에 쥐는 게 없다. 그래도 하는 일도 없고 돈도 못 버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자위해 본다.
나보다 먼저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한, 한 때는 직원 수 십 명을 두고 잘 나갔던 친구들이 요즈음 하나같이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우리 건축사업계가 최악의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을 잘 못 만난 건지 세월을 잘 못 만난 건지 ‘한 번 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는 꽃’처럼 젊은 건축사들의 처지는 더 딱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나 혼자 보다는 여럿이 함께 힘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래, 자갈, 물, 시멘트 각자는 미약할지 모르나 이것들이 한데 뭉치면 콘크리트가 되어 어마어마한 건축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협회의 기능도 다를 바 없다.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이 형들 믿고 까불 듯이, 우리도 협회를 믿고 까불 수 있어야 한다. 산처럼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그런 협회 말이다.
짧게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건축사등산동호회도 그런 취지에서 만들어져 매월 한 번씩 정기산행을 해 오고 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리고 오는 8월 초엔 일본 건축사협회와 함께 북알프스 등정을 앞두고 있다. 내 건강도 챙기고 건축사와 협회도 세상에 알리고 심기일전해서 일도 열심히 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유난히 변덕스러운 금년 봄 날씨가 계속되었다. 꽃샘추위 없이 오는 봄 없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 없다. 사무실 건물 앞에 목련이 이제야 꽃망울을 터트렸다. 이렇게 매일 같이 아침에 출근해서 일 할 수 있는 일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지 모르겠다. 2010년 3월의 마지막 날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