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욱
머리카락이 지배하는 집은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
햇빛이, 이거 봐라 하고
머리카락과 뭉친 먼지의 반사광을 보여줄 때
증명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그게 최대의 문제인 줄 안다
성인도 어린이도 뭔가 가지고 있다
그게 무얼까 그게 정말 있는 걸까
의심하고 싶어 죽겠지만
머리카락은 질문을 받지 않으며
그냥, 조상의 유령처럼 집을 차지하고서
저 혼자 차근차근 영원성을 준비한다
-『곡면의 힘』
서동욱 시집 중에서/민음사/ 2016
왕이 국가의 주인이었던 조선시대는 역모가 가장 큰 죄였다. 그래서 역모를 꾀한 이들은 삼족을 멸했고, 살던 집마저 파괴하고, 그 터에 물을 담아 못으로 만들어버렸다. 집을 단순한 대상(object)로 보지 않았고, 집 자체가 사회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에게 집은 가족사의 장이고, 사회적인 장이었다. <대학>에서도 첫 장에서 개인적인 차원에서 ‘가장 좋은 곳에 머무르는 것(止於至善)’을 강조했다. 그 집의 영원성을 머리카락이라는 사소한 신체의 일부를 통해 들춰내면서 집이라는 장소에 머물러 있는 깊은 역사성을 생각해 본다.
함성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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