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건축사 등산 동호회 3월 정기 산행에 참가하면서 제주도 한라산과 올레코스 등을 다녀왔다. 금요일 오후 인천 연안부두에서 밤배를 타고 가서 일요일 오후 늦게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는데, 제주에 이틀간 머물면서 첫날에는 15년 만에 개방된 한라산 돈네코 코스 산행을 하고, 이튼 날 오전에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을 본 다음 마지막으로 올레2코스를 걷기 위해 섭지 코지에 내렸다. 그런데 시간이 부족하여 정식 루트는 걷지 못하고 올레코스 주변의 섭지코지 해안길을 걷다가 오게 되었다. 몇 해 전 제주도에 올레 코스가 등장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올레’는 ‘골목, 골목길’의 제주도 사투리로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해 큰 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돌(현무암)로 쌓은 골목을 말하는데, 보통은 집으로 귀가하는 길로 쓰인다. 그리고 현재는 도보여행객들이 제주 방문 시 걷기 위해 찾는 길을 총칭하는 것으로 쓰임이 확대되었다.

제주 올레길은 1코스가 시작되는 성산 일출봉에서 제주 남쪽 해안을 우측으로 이동하며 11코스까지 나뉘어 있다. 현재는 제주도 서쪽을 돌아 북쪽 해안으로 16코스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중 1코스는 성산 일출봉 인근의 광치기 해변이고 이번에 걸으려 했던 2코스는 그 길에서 이어져 마을 안쪽을 돌아가는 길이다.

그 올레길이 갖는 의미는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던 그동안의 관광 행태로부터 삶을 느끼며 체험하는 것이다. 다비드 부르통은 자신의 산문집 서문 맨머리에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라고 썼다. 땅으로부터 멀어진 채, 살아가는 도회인들은 땅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터에서 다시금 자연과의 관계를 깨닫고 자신 안의 감각을 일깨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과의 밀착된 체험이라는 좋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올레’길은 상표 딱지를 붙여 놓은 것 같은 의미도 갖게 되었다.

이번에 걸은 해안에 마리오 보타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이 있어 관심을 갖고 있던 휘닉스 파크가 지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곳을 돌아보다 보니 제주도를 소개하는 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던 성산 일출봉과 어우러진 유채 밭 바로 그 곳이었다. 휘닉스 파크는 바로 제주도에서 가장 특징적인 인상을 갖고 있던 터를 개발하여 사업을 벌여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인상은 천혜의 관광지를 살린 고급 휴양지를 느끼게 한다.

휘닉스 파크로 들어서기 위해 그 주위로 낸 도로를 걷다가 맞은편에서 아스팔트 길을 걸어오는 나이 많든 해녀와 마주쳤다. 잠수복차림에 도구를 등에 짊어진 완벽한 복장을 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 곳이 오래전부터 그녀의 삶이 깃들어온 삶터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진짜 ‘올레길’이 개발되어 해녀가 낯선 곳을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올레길은 ‘바다에 나가 일을 하다 하루해가 저물 때 가족이 걱정할 것을 염려하면서 서둘러 귀가하던 길’이란 의미다. 농토에서 일을 하다 귀가하던 삶의 길이다. 자연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그 삶터에 깃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느끼던 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올레길’이라는 상표를 붙여 삶과 무관한 사람들이 관광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아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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