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현대소설을 확립한 대작가 황순원의 업적을 기리고 전하기 위하여 건립한 황순원문학관이 서 있는 곳의 정식 명칭은 <양평군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다. 어째서 이렇게 긴 이름이 생겨난 것일까. 양평군이란 지자체명이
들어간 것은 문학관을 건립한 주체를 나타낸 것일 뿐만 아니라 문학관이 소재한 위치를 나타낸 것이고,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기려야 할 인물명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의 작품, 특히 「소나기」란 소설을 선택하여 그 소설이 지니고 있는 허구적 인물들과 시대적 장소적 공간, 그리고 여러 가지 장치들을 만들어 하나의 마을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였기에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을 운영하는 기관은 양평군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사단법인 황순원기념사업회다. 이 기념사업회의 요청에 따라 그곳 촌장을 맡은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서울서 출근을 한다. 한 시간 반가량 88올림픽도로와 북한강변 지방도로를 따라 승용차를 몰고 가다 보면 멀리 숲 우거진 언덕 위로 황순원문학관의 원뿔형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원뿔형의 지붕을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지 못하지만 멀리서거나 가까이서 그 지붕을 볼 때마다 「소나기」 작품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썩 잘 표현했다며 혼자서 감탄을 하고는 하는 것이다.
흔히들 어떤 인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진 문학관 건물이 갖추어야 할 기본조건으로 그 인물의 특징적 성격을 예술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것을 내세운다. 다시 말해서 문학관이란 한 소설가나 시인을 또는 그가 남긴 작품들을 이미 외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구조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3층의 연면적 2,035㎡ 황순원문학관 건물의 중심축을 이루는 원뿔형 지붕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에서의 주요 공간적 장소인 세워놓은 수숫단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멀리서 지나가는 행인이 그 건물의 원뿔형 지붕을 보고 조금이나마 신기한 느낌을 받는다면, 그 건물은 이미 문학관의 구실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소나기」에서 수숫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이웃마을에 각각 사는 소년과 소녀를 하나로 묶어주는 장소다. 시골과 도회지로 서로 떨어져 살던 소년과 소녀가 어느 날 개울가에서 처음 만나 사귀게 되어 들판을 쏘다니다가 소나기를 만나 비를 긋게 된 곳이 바로 세워놓은 수숫단 안이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소년 소녀가 비에 젖은 옷을 통해 체온을 느끼면서 풋풋하고 순수한 감정의 파동을 나눌 때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것이 수숫단인 것이다.
「소나기」가 황순원 소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이 소설은 그의 문학세계를 이루는 서정적 성격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그 서정적 성격은 주로 민담적이고도 서민적인 세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바로 그것은 그의 어린시절을 보낸 평안남도의 정서 속에서 피어났던 것이다. 그의 소설 가운데에는 「무서운 웃음」이란 아주 짧은 단편소설이 있는데, 그 소재가 어떻게 얻어졌는지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소학 이삼학년 때부터 나는 방학만 되면 시골 할아버지 댁에 나가는 것이 한 버릇처럼 돼 있었다. 그 시절에 내가 보고 듣고 한, 이야기의 하나”가 그 작품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민담이나 전설, 그리고 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소설화한 작품은 수 없이 많다.
1953년에 발표된 소설 「소나기」도 6ㆍ25전쟁의 비극을 겪으며 받은 당대 소년 소녀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의도로 그 자신의 어린시절의 감성을 되새기며 빚어낸 작품이다. 그 소설의 수숫단을 상징하는 황순원문학관, 그 원뿔형 지붕의 유리창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찬란한 빛이 유리막대에 새겨진 그의 육필원고를 밝혀주기 위해서라도 ‘움직이지 않는 성’으로서 오래오래 굳건히 서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