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과 담소를 나누다 마음이 편치 않은 얘기를 듣게 됐다. 그 내용은 지인의 아들이 고3이 되었는데 ‘건축과’에 가고 싶다는 아들의 얘기에 부인이 “절대 안 된다. 너 인생 망치고 싶니?”하며 큰소리로 야단을 치더라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지인은 “아들 녀석이 ‘건축과’ 가고 싶다는데 보내면 되지 뭘 그리 화를 내?”라고 말했지만 사랑하는 부인이 “불행한건 나 혼자로 족해요. 당신 때문에 집이 이지경인데 아들까지 이렇게 살 게 할 순 없어요”라며 울먹이는데 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보다 밤낮 일하느라 가정에 신경을 못 쓰고 살아온 결과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다고 했다.
친분 있는 건축과 교수님도 “요즘 설계하려는 친구들이 없다. 다들 건설사 아니면 연구소 가려고하지”라고 하신다. 건축하는 선후배와 얘기를 나누다보면 “아들이 건축한다고 할까봐 걱정이다”, “조카가 건축과 간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말리느라 혼났다”는 말을 쉽사리 듣게 된다. 어쩌다 건축이, 건축설계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필자가 건축사사무소에 취업한 이듬해 IMF가 터졌고 그로 인해 업계를 떠나 다른 직종에 종사하게 된 분들이 참 많았다. 요즘은 함께 건축을 하던 후배들도 힘들다며 건축설계를 포기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물론 건축을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가 건축설계 일에 종사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건축사)가 건축을 선택한 이유는 나름대로 마음에 열정과 의지 그리고 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건축설계환경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초창기에 제대로 된 설계비를 받고 건축사가 대접받는 건축문화를 만들어 줬더라면 이런 홀대는 받지 않을 것이라던 후배의 얘기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세상에 종말이 오기까지 건축행위는 계속 될 것이고, 우리 후배들은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건축의 계보를 이어가게 될 것이다. 큰 규모의 조직문화에서 건축을 하든, 작은 규모의 아뜰리에서 건축을 하든, 열정을 담아 디자인하고 작품을 만들어 가는 건축사들은 모두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휴일없이 일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누릴 행복한 시간을 반납하고, 설계비에 힘들어하는 그런 건축사가 아니라 건축주에게 멋진 디자인을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일한 만큼 대가를 당당히 요구하며, 자신의 건축에 책임질 수 있는 건축사이기를 바라게 된다. 후진들에게 “건축! 참 의미 있고 도전해볼만한 일이야. 네가 건축을 하게 되면 참 행복해 질 거야!” 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는 환경을 이제부터라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옆에 있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는 게 전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사랑과 의지로 어려운 점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다 보면 반드시 그런 날이 올 것이라 필자는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