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놈놈이란 영화가 있었다. 1930년 총칼이 난무하던 시기 보물지도를 차지하기 위해 혼전이 벌어지는 영화다.
무법천지에서도 착한 놈이 있고, 돈되는 건 뭐든 하는 나쁜 놈이 있다. 그리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이상한 놈이 있다. 지금 설계·감리 분리를 둘러싼 건축계의 모습은 1930년대 혼돈의 시기 같다. 이 격동의 시기에도 좋은 건축사가 있다. 조형창작 예술인으로서 건축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 국민의 쾌적한 생활공간과 환경개선을 위해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한다.
이뿐 아니다. 전문가로서 기술개발과 건축물의 질적 향상에 사명을 다한다. 매년 총회 선서를 통해 리마인드 하는 건축사 헌장을 지키는 좋은 건축사가 있다.
나쁜 건축사도 있다. 돈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는 그래서 건축윤리에 어긋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 삶터로서의 건축이 아닌 돈을 곧 진리로 여기며 인간의 안전마저도 위협하는 그런 나쁜 건축사가 있다. 그리고 생존이 목표가 되어 버린 이상한 건축사가 있다.
그럼 나는 어떤 건축사일까. 초기에는 당연히 좋은 건축사가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곧 ‘일상’이 되며, 건축의 과정이나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법이나 부정은 아닌 그런 건축사가 되고 있다.
이번 설계·감리 논쟁을 보며 ‘좋은 건축사’들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이상한 건축사인 나는 ‘갑’ 앞에서는 약해지는 ‘을’로서의 자괴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직업윤리라는 것이 제대로 설계하고 제대로 감리하고 제대로 지어지는 그런 건축을 바란다. 이런 비겁한 나를 두고 “제대로 받고, 제대로 일하면 된다”며 “이런 식이면 건축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 아니냐. 당신 같은 생계형 건축사가 지속적으로 건축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다.
나도 매순간 좋은 건축사를 꿈꾼다. 하지만 낙타가 바늘구멍에 통과할 만큼 어렵다. 물론 개인의 자질문제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핑계 같지만 그 배경에는 관행이라는 현실도 존재한다. 전반적인 건축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며 건축계 내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건축사들은 시민들을 만나 삶을 공유하고 그들을 닮은 또 담는 집을 만든다. 그렇기에 좋은 건축을 알아보고 누릴 수 있는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 그렇게 조금씩 건축문화에 대한 인식을 증진시키고,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면 그때 설계·감리를 분리하지 않아도 될 문화기반이 될 것 같다.
건축사를 단순한 기준으로 좋다, 나쁘다, 이상하다로 구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건축을 하는 우리 모두가 힘든 발자국을 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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