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신진건축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협정 시범사업에 응모했었다. 부산의 건축협정 시범사업 건축사로 선정되어, 이 일을 약 6개월 진행했다. 건축협정제도에서 건축사는 사업의 코디네이터로서 지주들과 인허가권자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역할을 잘 수행하여 건축사의 새로운 업무 영역을 만드는 것이 이 시범사업의 목표였다. 이 점에 국토교통부도 의지와 노력이 상당했다. 그러나 의지로 충만했던 시범사업은 공무원들의 무관심, 지주들의 능력부족, 사업자의 수익에 대한 기대, 건축설계를 소비·인허가 도구로 생각하는 지주, 정상적인 대가 없이 건축사의 희생을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로 인해 기대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특히 다양한 입장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면서 사업을 이끌어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기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건축사인 우리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입장차이의 중재, 그리고 그 입장을 조절하여 맺는 협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기회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 건축사들의 협정은 불가능한가? 필자의 경험을 통해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최근 언론·저널을 보고 찾아온 설계의뢰자의 사례다. 이들은 부산의 몇 건축사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것도 모른 채 그들의 말에 기본계획과 디자인(투시도)을 하여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물론 계약 전에는 디자인하지 않는 소신과 원칙도 있었고, 그 사안에 대해 충분히 피력했다. 하지만 반드시 필자와 설계를 하겠다는 말에 속았고, 결국 설계를 수임하지 못했다. 이 의뢰인은 사업의 시기를 조금 늦추어야할 상황이라, 기다렸다가 시작시점에 설계계약을 하고 진행하자고 했다. 필자는 이 말을 믿었으며,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실시설계는 다른 건축사를 통해 진행됐고, 그 이면에는 저가 설계비와 건축사의 굽신거림(좋은 말로 적극적인 어필)이 있었다. 필자도 다른 건축사가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반드시 기존 진행 중이던 건축사에 대한 보상과 합의를 조건으로 설계를 수임하고 진행한다.
누가 우리 건축사들을 협정 맺어 줄 것인가? 타 건축사가 제안한 설계안이 존중받고, 이 설계안이 무단으로 도용되지 않을, 우리 건축사협정은 불가능 할까? 이 협정은 건축사들이 스스로 자기와 맺어 가야하는 중요한 협정일 것이다. 최근 빅 이슈였던 소규모 감리분권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다. 우리 건축사들 중에도 반대와 찬성이 나누어진다.
이 사안에 대한 건축사들의 협정 맺기시도는 왜 없었을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이 모든 것이 건축사들간의 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건축협정사업이 그러하듯이 건축사협정은 우리 건축사들의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공평하고, 서로가 존중되고, 비겁하지 않는 각자의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