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나도 저런 집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 텔레비전 광고를 보며 친구끼리 하는 수다다. 반듯하게 정리된 서재, 먼지 하나 없는 거실, 그 안에서 우아한 셔츠와 원피스를 차려입고 살고 있는 멋진 연예인. 하지만 시선을 텔레비전에서 조금만 옮겨 주방을 보면 밀린 설거지와 빨래, 무릎 튀어나온 추리닝. 우리 일상이 그리 우아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건축을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런 건축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건축 잡지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화창한 날씨에 사람들이 입주하기 전 완벽하고 멋들어진 건축물 사진만을 보여준다. 하지만 헤르만 헤르츠버거는 이 책을 통해 “건축은 절대 특별한 아니다”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의 일상적인 생활을 관여하니, 건축가가 설계하는 모든 공간은 사람을 향한 애정이 가득한 공간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것이 건축가가 건축을 통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저자인 헤르만 헤르츠버거는 네덜란드 건축가다. 특히 공공건축분야에서 독보적 두각을 나타내며 건축이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한다. 이 책은 그가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펼쳤던 건축 강의에 기초한다.

그렇다면 건축가가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축을 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이 책에서 위대한 건축이론이나 구구절절한 건축 디테일을 찾으면 안 된다. 저자는 건축을 설계하는 방법을 남에게 가르쳐주기는 불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대신 저자의 핵심은 ‘건축가가 무엇을 설계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헤르만 헤르츠버거는 이 책을 통해 건축학도들을 자극하고 건축적 사고를 일깨워 스스로 작업하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건축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 그들은 저자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작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공간’은 언제나 우리 옆에 소박하게 있다. 아이를 기다리기 위해 부모들이 모여 있는 어린이 집 입구를 생각하자. 이곳에 건축가가 부모들을 위해 특별히 벤치를 만드는 것은 과도한 배려일 수 있다. 부모들이 정말 벤치를 원할 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입구에 서있는 기둥의 아랫부분을 넓혀 비공식적인 좌석을 제공할 수 있다. 부모들이 예상보다 오래 기다려야 하는 날, 그런 좌석이 있어 기쁠 것이고,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외투와 가방을 그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저자는 건축가가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애정을 쏟으면 공간의 질이 향상될 뿐 아니라 효과적인 공간 활용을 유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가 설계한 한 공동주택은 계단을 햇빛이 잘 드는 밝은 곳에 배치했다. 그리고 유리지붕이 덮인 거리처럼 최대한 빛이 잘 들어오고 시야가 트인 느낌이 나도록 설계했다. 계단을 다른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을 두고, 인접한 세대가 사는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꾸몄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계단은 이웃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됐다. 이는 건축가가 공간배치를 통해 거주자들 간의 만남을 늘려 공동체 삶의 가능성을 이끌어 낸 것이다.

사람은 주변의 사물에 개인적인 영향을 행사할수록 그 사물에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관심을 많이 기울일수록 정성과 애정을 쏟고 싶은 마음도 강해진다. 이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어쩌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빈 용기를 만드는 것이 전부일 수 있다. 빈 용기를 가능한 평범하고 중립적으로 만들어 주민이 실현할 자유를 충분히 누리도록 해야 한다. 다양한 제안을 내포하고 끊임없이 연상을 불러 일으켜 사용자가 직접 완성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정해진 한계에서 악기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이런 면에서 공간은 악기와 비슷하다. 공간은 사용자가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하는 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행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시키기 위한 악기 즉 공간을 만드는 것이 건축가가 해야 할 일이다.

결국 설계를 한다는 것은 건축 재료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되도록 재료를 조직하는 과정이다. 의도적으로 형태를 부여한 모든 것은 기능을 더 잘 수행해야 한다.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시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할을 해내기에 더욱 적합해야 한다. 즉 건축가가 꿈을 꿀 여지도 더 많아진다는 이야기다.

헤르만 헤르츠버거 저 | 안진이 옮김 | 효형출판 | 284 페이지 | 정가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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